내가 여전히 나일 수 있게 하는 것
(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근 10년 동안 지속해 오던 여름의 소중한 루틴이었지만, 과연 결혼 후에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부모님 역시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남동생과 셋이 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셨고, 올 초에 비행기와 숙박 예약을 나를 제외한 세 명만 했다. 동생 입장에서는 내가 결혼을 했으니 가족 여행을 못 가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같이 가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자유 여행이라는 것이 순간의 판단에 의해 부모님께 체력적인 힘듦을 안겨 드릴 수도 있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고심 끝에 나도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 전과 달리 마음에 걸리는 사람.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의 새로운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 여행에서 그를 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올해는 가족 여행을 가야 할 것 같아. 혹시라도 임신을 하게 되면, 그때는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갈 수 있을 때 갈까 하는데 괜찮겠어?"
남편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응, 당연히 가야지! 가서 부모님과 편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다 와요."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여름휴가를 삿포로에서 보냈다. 날씨도 좋았고, 계획적인 동생과 즉흥적인 나와의 균형이 잘 맞아서 가족 여행은 어느 때처럼 즐거웠고, 어느 때보다도 애틋했다. 여행을 가면 동생과 생각하는 바가 부딪혀서 꼭 한 번씩은 다투곤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은 우리 덕분에 이렇게 좋은 여행을 한다며 고맙다고 몇 번씩 말씀하셨다. 아마 내년에는 이렇게 가는 것이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면 모든 순간이 이처럼 애틋해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좋은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남편이었다. 남편은 내게 소중한 것들을 나만큼이나, 때론 나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나도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챙기고 존중하게 된다. 여행에서 느낀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결혼 전의 좋았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지속하며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은 괜찮은 결혼의 모습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