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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Apr 12. 2024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그들은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중에서-


책의 원제는 The Course of Love (사랑의 과정)이나 우리말 제목을 잘 지은 예. 마케팅에 아주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조차도 낭만적 연애 이후의 삶은 어떨까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마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죽음 이후가 궁금한 사람처럼 결혼 전부터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 가장 가까이에 부모님의 사례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해야 될까요?'라는 주제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꽤나 핫하다. 결혼 전에도 영상이 뜨면 꼭 한 번은 눌러보곤 했으니. 들으면서 '음.. 그렇지.. 이건 안되지.. 이건 지금 만나는 사람과 같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차피 그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전하는 말들이기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바뀌지는 않았을 터. '남의 인생은 남의 것,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신조만 더 굳건히 만들 뿐이었다.


이제 신혼 5개월 차. 낭만적 연애의 연장선에 있는 내가 그 이후의 일상에 대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아직은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남편이랑 강아지랑 함께 하는 것이 좋은데..'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데 이게 평생 반복된다고 해도 좋겠어?'라고 나에게 반문했다.

얼마 전 아주버님 -이라는 단어는 정말 입에 안 붙네- 께서 벚꽃이 예쁘니 주말에 영종도에 놀러 오라고 하시기에 "가자! 요즘 계속 집에만 있어서 지루하려던 참인데"라는 나의 말에 남편도 적잖이 놀란 듯했다. '아니, 매일 재밌다고 하더니, 집에만 있어도 좋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었네?'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어쩌면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람은 종종 자기의 입장대로 상대방의 생각을 만들어내곤 한다.


신혼 5개월 차에 접어드니 일상에 함께 하는 루틴이 생겼고, 미술관 데이트를 하거나 핫플레이스에서 외식을 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었다. 결혼 전에 데이트를 할 때는 늘 새로운 곳에 가곤 했는데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도 매주 토요일에는 장을 보러 가시고, 그 후에 동네 산책을 하셨다. 매일이 똑같아서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그 루틴 속에서 부모님은 40여 년의 세월을 지내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좋은 배우자는 지루한 일을 반복해서 할 줄 알고(=성실하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나부터 그런 사람이어야겠다는 것.

그래야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벌였던 이 도박에서 살아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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