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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Nov 03. 2024

주말의 뚱자

우리는 같이 별을 보았지

정말이지 힘든 주말이었어. 오빠랑 언니는 내가 편하게 쉬고 있던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뭔가를 챙기더니 급기야 나를 챙기는 거야. 난 혼자 있으면 불안하지만 차 타는 것도 싫어. 차만 타면 숨이 막히고 온몸이 떨리는데 왜 나를 자꾸 차에 태우는 거야. 언니는 무슨 묘책이라도 생각난 것처럼 뭔가를 귀에 씌어 주었는데 별로 나아지는 건 없었지.


차를 타고 한참을 가더니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내렸어. 언니가 어디선가 감자를 구해 오더라. 기다란 나무 꼬치에 회오리 모양처럼 생긴 감자였어. 오호라. 이걸 먹으러 온 건가? 감자를 먹고 나니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지. 하지만 다시 차를 타곤 어디론가 가는 거야. 도대체 어디 가는 거지? 내가 가는 곳을 알 수나 있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차에서 내리게 되면 내가 볼 일을 보길 바라는 것처럼 오빠랑 언니는 천천히 걸어. 나는 아무 데서나 오줌을 싸지 않는 걸 아직도 모르시나? 나처럼 매너 있는 강아지들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는 웬만해서 싸지 않지. 아무리 급해도 풀숲이나 흙 위에서만 볼 일을 본다고. 게다가 혹시라도 이런 낯선 곳에 날 두고 가면 어떻게 해? 차에 타는 건 싫어도 이럴 땐 잽싸게 올라타야 해. 어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집에서 아주 먼 곳에다가 개를 버린대. 개가 다시 집을 찾아오지 못하게. 그럼 개들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줄 알고 그 자리에서 주인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거야. 주인이 돌아올 거라고 믿고.


순진한 강아지가 아니야. 나의 불안함은  보호해 줬지. 그래도 좋았던 건 내가 내린 곳에 노란 낙엽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는 거야. 낙엽을 밟는 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소리 중 하나지. 엄마가 사과 깎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 다음으로.

컹!!컹!!!

컹!!!!컹!!!!!!


어휴 깜짝이야.


또 한 번을 더 달려서 도착한 곳엔 하얗고 큰 개가 있었어. 우리를 보더니 왜 왔냐는 듯이 짖기 시작했지. 그 개와 우리 사이에 높은 철망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여기 개들은 시끄럽고 한 번 짖으면 멈출 줄을 모르네. 심지어 짖지 않는 순간에도 분노의 그르rrrrr렁 소리가 들려. 휴..쫄려... 이럴 땐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지.


언니는 나를 안고 풀이 가득한 숲 속으로 들어갔어. 혹여나 나와 오빠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건 아닐까 내 눈은 계속해서 오빠를 찾느라 분주했지. <잘 따라오고 있지 오빠>

숲 속의 파란 대문 집

집안에는 누구도 없는 것처럼 서늘한 기운이 돌았어. 언니랑 오빠는 창문을 열더니 열심히 바닥을 닦고. 다음에는 내게 물을 주고 있을 곳을 만들어 주었지. 하지만 그때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어. 날 여기 두고 갈지 어떻게 알겠냐고. 가만있어봐.. 여기에 들어가면 집으로 가는 거였나?

나 돌아갈래

오빠랑 언니가 집을 따뜻하게 만들 동안 난 계속 여기에 있었지. 오빠는 내가 푹신한 곳을 좋아한다면서 이 속에 담요를 깔아 주었어. 응. 푹신한 거 좋아하는 건 맞는데.. <.. 집에 가고 싶어>

반나절만에 폭삭 늙은 내 얼굴

이곳에는 얼마나 있게 될까?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고 몸이 아픈 것 같았어. 어느새 밖이 어두워지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 그래도 구마는 맛있었어. 오빠랑 언니를 따라서 볼 일을 보러 나간 밤에 언니는 나를 안아 올리고선


"뚱자야 저기 반짝이는 별들 보여?"


라고 손짓을 했어. 고갤 들지 않으니 언니가 날 눕히다시피 안아 들었고 거기엔 내가 있던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얀색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어. 깜깜한 밤에 금방이라도 눈앞에 쏟아질 듯 반짝이는 저들.. '별'이라고 하는구나.. 뭔가 이상한 기분이 내 안에 퍼졌어. 


다시 이 작은 집에 돌아와서는 매트에 누워 잠을 청했지.

나는 언제나처럼 오빠랑 언니 사이에 자릴 잡았어. 오빠는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고, 언니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어. 옆으로 누운 언니의 형체는 커다란 산 같았지. 그렇게 모두의 형체만 보이는 칠흑 같은 밤에 목이 말라서 혀를 쩝쩝 다시고 있으니 어디선가 물그릇이 쑥.


언니의 손이었어.


물을 마시고 컥컥 대자니 등을 쓰다듬는 것.


언니의 손이었어.


나는 여지없이 언니의 손길에 르렁대고 말았지만 신기하게도 언니는 나에게 필요한 알고 있었어.


밤은 고요해졌고, 장작은 타들어가고

 오빠의 코 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


별 보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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