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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Oct 27. 2024

주말의 뚱자

불청객이 찾아왔고

배가 고파서 못 견딜 즈음에야 침대에서 일어나는 날이야. 일어나자마자 오빠랑 언니가 바쁘네. 오빠네 집에서 두 번의 밤을 지냈으니 오늘은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엄마가 보고 싶기는 하지만 오빠랑 떨어져 있는 건 싫어. 이럴 때는 식탁 밑에 있는 곰돌이 아지트로 들어가거나 오빠 방에 있는 검은색 소파로 가서 멍을 때리지. 그러면 오빠는 언니에게 말해. "뚱자 기분이 좋지 않네. 오늘 집에 가는 날인 걸 아나 봐."



내 기분을 알아주는 건 역시 오빠 밖에 없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오빠랑 언니가 같이 주방에 있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둘 다 뭘 만드느라 난리지? 어? 식탁 옆에 있던 의자가 거실로 옮겨졌어. 불안한데.. 자꾸 뭘 바꾸려고 들지 말란 말이야.


주방에서 한참 맛있는 냄새가 나는 뭔가를 만들더니 언니랑 눈빛을 주고받은 뒤 나에게 옷을 입히는 오빠.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려나 보다 했지. 기분 좋게 나가서 냄새를 맡고 똥도 시원하게 싸고 꼬리를 흔들면서 산책을 즐겼어. 비가 온 다음날이라 풀냄새가 아주 좋군! 잠시 견생의 시름은 잊고 이 순간을 즐겨 보는 거야 하는 찰나, 작은 인간이 차에서 내리더니 내게 달려왔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 마냥



"뚱~~자~~~~~~~~~~~~~~~~~~!!!!"


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도무지 내가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작은 인간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빨라. 한 번이라도 날 만지지 못해 안달이지. 게다가 어떤 작은 인간들은 나를 싫어해. 내가 물려고 했다며 오명을 씌우지. 말했듯이 내가 아는 한, 개들은 인간이 먼저 만지기 전에는 물지 않아. 그런데도 인간들은 작은 인간의 말이라면 오구오구 다 들어주더라고. 아주 견꼴 시려서 못 보겠어.


그 작은 인간은 다른 두 명의 큰 인간들을 데리고 왔어. 오빠는 그중 한 명의 인간을 알고 있나 봐.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더니 급기야는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아.. 아니.. 오지 마...! 너네 갈길을 가!!!


집에 들어가니 아까와는 달리 알록달록한 과일이 풀과 함께 놓여 있어. 오빠랑 언니가 바쁘게 준비하던 것들이지. 갑자기 집이 좁아지고 시끄러운 기운으로 가득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일단은 식탁 밑으로 몸을 숨겼어. 인간들 다섯이 모이니 어질어질해. 심장은 빠르게 뛰고 <빨리 이 인간들이 나갔으면 좋겠다> 고 온 힘을 다해서 표현하는데 작은 인간이 갑자기 얼굴을 쑥 들이미는 거야. 어디서 찾아냈는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펭귄 인형의 발등을 누르곤, 사랑해! 를 연발해.  아앗.. 시끄러워...!


펭귄 인형은 자기가 듣는 모든 소리를 따라 하지. 내가 그 인형을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 작은 인간들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아. 매우 시끄럽다는 것.


어떻게든 나의 관심을 끌려던 작은 인간에게 내가 그르렁대며 겁을 주었더니 엄마로 보이는 큰 인간 옆에 꼭 붙어 있더라. 그래, 날 괴롭히지 마. 지금 난 낮잠이 필요해. 하지만 왠지 방으로 가기엔 소외감이 들어서 식탁 밑 나의 자리에서 잠을 청했지. 언니는 인간들이랑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갑자기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마치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언니는 뭔가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내가 오줌이 마려울 거라며 리드줄을 채우더라. 오줌이 마려운 건 어떻게 알았지? 차라리 지금 이 순간에는 언니랑 둘이 있는 게 낫겠어. 이제 좀 조용히 밖에서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작은 인간이 따라 나와서 나를 안아보겠대. <단호하게 행동해 언니! 나를 다른 인간에게 기지 말란 말이야.>


나의 견시렁이 들리지 않았는지 언니는 나를 작은 인간에게 안겼어. 싫어. 나는 발이 허공에 떠 있으면 불안하다고. 나를 안을 때는 엉덩이도 충분히 받쳐 줘야 하는데 작은 인간은 눈치도 없이 자꾸 안으려고 드는 거야. 나보다도 작은 것이.


자포자기한 내 얼굴

급기야는 리드줄을 잡아보고 싶대. 언니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주지 마. 얘들은 우리가 냄새를 맡든지, 똥을 싸든 지 상관하지 않고 지들이 가고 싶은 대로 간단 말이야.> 리드줄을 이 작은 인간에게 쥐어 주었어. 배신자..!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말이야?

작은 인간에게 잡힌 리드줄  

작은 인간이 리드줄을 잡은 후 나는 가끔 뒤돌아 보았어. 멀리서 보이는 언니 표정은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이 인간이 마음대로 가려고 하지는 않더라. 내가 가는 길을 잘 따라오기도 하고 한 번도 갑자기 멈춰서 가슴이 답답하게 하지는 않았어. 다리에 뭔가를 차고서도 열심히 뛰는 모습이 약간은 기특할 정도였지.


넌 내가 만난 작은 인간 중에 최악은 아니군..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왔고 드디어 그들이 집에 갈 시간이 되었어. 우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하루가 빨리 갔어. 아주 길고 긴 시간이었지 뭐야. 온몸의 기가 빠진 기분이야. 오빠랑 언니는 그들을 보내러 가는 길에도 날 데리고 나갔지. 그런데 작은 인간이 또다시 나를 안아보겠다고 조르는 거야. 콜록콜록 나 몸이 좀 아픈 것 같아. <어서 인간들을 떼어놓고 우리 집으로 가자>


오빠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서 길가에 주저앉았는데 무언가 내 등을 만지는 느낌이 왔어. 뭐지 기분은?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네... 이건 예전에 언니가 나를 만지던 손길과도 같아. 조금씩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지.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검은색 후드를 쓴 작은 인간이 나를 만지고 있었어. 하.. 내가 그렇게 밀어내도 녀석은 지칠 줄 모르는군. 이제 어쩔 수 없이 이 인간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인정해야겠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준비되었을 만져줘서 고마워.

새로운 인간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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