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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Oct 22. 2024

주중의 뚱자

나의 사랑, 나의 오빠

"뚱자야 양치하자!"


오빠가 화장실로 들어간다는 건 곧 나를 괴롭힐 거라는 신호야. 그 신호를 감지하면 나는 재빨리 방석으로 가서 몸을 숨겨. 몸속에 머리를 숨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그런데 오빠는 아주 쉽게 날 찾아내고 말아. 노란 공룡이 그려진 칫솔을 갖고 나와서 검지 손가락을 내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끼고 어금니를 쓱쓱! 혓바닥도 쓱쓱!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지만 오빠의 손가락 때문에 입을 다물 수가 없어. 으으. 이건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야. 그나저나 이 치약은 사과맛이라고 하더니 왜 이렇게 ?


앞니는 잘 닦지 않아. 왜냐고? 난 어금니로만 음식을 씹거든


양치가 끝나면 오빠는 둥글고 핑크색 빗을 가져와서 온몸을 빗겨줘. 꼴랑 이천 원짜리 과자에도 행복해하는 오빠가 이 빗에 삼만 오천 원이라는 거금을 썼대. 그래서인지 내 털은 항상 보송하게 유지되고 있어. 오빠가 날 빗겨줄 때의 순서는


1. 앞머리를 띄웠다가 내리는 것을 반복한다.

2. 등과 배, 꼬리, 발등까지 조물조물 빗질한다.


오빠는 꼬리를 빗길 때 특히 시간이 오래 걸려. 아마도 다른 강아지들에게 예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인 것 같아. 아휴.. 나는 이미 강아지한테는 관심이 없는데 말이야. 양치하고 빗질하는 과정이 귀찮아도 내가 가만히 있는 데는 이유가 있어. 오빠가 날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 푸들이라고 해도 다 같은 푸들이 아닌 거 알지?

어떤 푸들은 길고 가는 꼬리를, 또 어떤 푸들은 짧고 뭉뚝한 꼬리를 가지고 있어. 나처럼 풍성한 솔방울 꼬리를 가진 푸들은 없을 걸? 세상에 나 같은 강아지는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지.

어때? 좀 예뻐?

양치와 빗질을 끝내면 오빠는 톱니바퀴처럼 생긴 기다란 간식을 줘. 그래, 나는 이걸 먹는 순간을 위해서 모든 괴로움을 견뎌온 거야.


톱니바퀴처럼 생긴 이 간식. 빈틈의 간격은 내 이빨의 크기와 비슷한 게 좋대. 그래야 입 속의 병균들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나. 뭐, 나는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사람들은 내 이빨이 예쁘고 고르다고 감탄해.


오늘의 할 일을 끝내고 드디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왔어. 오빠 옆에 누워서 마구 귀여운 척을 하는 시간이양. 오빠가 바닥에 몸을 누이면 나도 같이 누워서 얼굴을 비비거나 땅을 파는 행동을 해. 그럼 오빠는 "뚱자야, 원하는 게 뭐야?" 하면서 나를 부드럽게 만져줘. 정말이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지. 아니, 없었지..!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머리털 많은 언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오빠는 손가락을 내 입에 넣으면서 장난을 치고 나는 살짝살짝 깨무는 행동을 반복하는데, 그 순간 오빠가 말해.


"하나도 안 아파, 윤영이도 만져 봐."


언니의 손가락이 움찔거려.

어쭈, 입에 손을 넣으려고?

어디 넣기만 봐라.

내가 봐주는 오빠에 한해서야.  


매서운 눈빛을 보냈더니 언니는 뻗으려던 손가락을 다시 넣었어. 나는 느낄 수 있어. 이 언니는 아직도 날 무서워하고 있다는 . 내가 성깔을 부리면 좀 지랄 맞은 구석이 있지. 오빠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야. 나의 시선은 항상 오빠를 향해 있고, 나의 귀는 오빠를 향해서만 반응해. 누가 아무리 나를 불러도 내가 대꾸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지 않아. 하지만 오빠가 나를 부르면... 나는 한 마리의 순한 강아지가 돼.

예를 들면 이런 눈.


오빠는 나를 씻기고 빗겨주기 위해서 하루 걸러 한 번은 같이 살던 집으로 와. 오빠가 일곱 시에 온다면 나는 네 시부터 오빠를 기다려. 어쩌다 오빠가 오지 않는 날이면 나의 하루는 길고 조용하게 지나가. 오빠가 나를 보고 가는 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올 조용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어. 내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오빠가 나로 인해서 행복해지는 거야. 오빠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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