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무렵 우리는 산책을 나갔어. 산책을 하려고 막 집에서 나온 사람들과 개들이 많았지. 킁킁 대며 서로의 냄새를 맡는 것이 개들이 인사 방식이야. 어떤 개들은 인사도 하기도 전에 짖지. 먼저 짖는 것들은 보통 작은 강아지야. 하여간 물지도 못하는 것들이.. 쯧. 나는 짖지 않아. 짖는 것은 자신이 약하다는 증거거든.
그럼 나는 어떤 식으로 인사하냐고? 어떤 개가 내 냄새를 맡으려고 접근하면 오뚝한 코는 씰룩대고 하얀 어금니는 금세 모습을 드러내. 그리고는 빠르고 강하게 "쿠-왕!!!!!" 하고 소리를 내며 접근 금지 표시를 하지. 그러면 언니는 낮게 이름을 부르며 "뚱자..!" 하고 목줄을 잡아당기고, 오빠는 그 개를 데리고 온 사람에게말해.
"얘가 친해지는 법을 몰라요."
난 다른 개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강아지 유치원에서도 하루 만에 쫓겨났지. 강아지 운동장에 갔을 때는 예의 없고 힘만 센 회색 푸들에게 한 발로 머리를 짓밟힌 적도 있었어. 그때 그 치욕스러운 기억이란...
난 선을 지키지 않는 강아지를 싫어해. 그래.. 어쩌면난 대부분의 강아지를 싫어하는지도 몰라.내가 왜 다른 강아지들과 친해져야 해? 나는 오빠랑 엄마만으로도 충분한데.
내게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도 오빠랑 언니의 바람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다 친구가 필요한 건 아냐. 나는 집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간식을 물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른 거잖아. 내게 친구가 없다고 불쌍하게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나에게 인사하러 왔던 그 강아지는 내게 물릴 뻔하고도 덤덤해 보이더라.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고 하는 게 정확할 거야. 나랑 그렇게 헤어지고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갈 길을 가는 거야.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곧잘 등을 내보이며 애교를 부리고 나중엔 발라당 누워가지고... 아주 여기저기 흘리는 강아지 같으니라고..!
오빠는 그 강아지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말했어.
"뚱자도 어렸을 때는 저랬는데... "
내가 어렸을 때 저랬다고? 자존심도 없이 아무 데나 발랑 드러눕는 강아지였단 말이야?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상처를 받을 일도 없지. 내 세상엔 오빠와 엄마만 있으면 충분해. 그런데 내가 저런 모습이었다니...? 상상이 되질 않아. 내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