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보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명상에 관심있는 사람
화를 다스리고 싶은 사람
나는 대학교 때부터 명상적 세계관에 꽂혀 있었다. 거의 매일 명상을 했다. 중간 중간에 득도한 것처럼 에너지가 좋아질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망했다.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화가 줄어든 건 몇 개월밖에 안 된다. 나머지 기간은 화가 늘어났다. 이유와 해결책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자.
인간의 본성은 자기를 직접 대면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명상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지고 심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자의식에 갇혀서 노이로제에 걸릴 수도 있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할 확률이 커진다. 현실에서는 너희가 잘나가지만 나는 명상하는 고귀한 존재야~라는 정신병적 망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내가 그랬다.
나는 실패를 인정한다. 내가 아니라 타인을 알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쯤 다르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명상에서 중요한 이 질문은 역사적 사기다. 나를 알려면 남을 알아야 한다. 남을 아는 만큼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평온한 정도가 자기를 아는 수준이다.
자기를 알아간다는 건 화나는 빈도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이게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다. 명상을 하는데 화가 줄어든다면 계속 명상을 해라. 하지만 명상을 해도 계속 까칠해진다면 명상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명한 명상가들을 조심해야 한다. 누가 법륜스님에게 물었다.
"명상을 하니까 짜증이 나고 더 까칠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명상을 하는데 왜 그래요? 명상을 하면 고요해지지."
법륜스님같은 명상 천재들은 일반인의 사정을 모른다. 물론 명상 초기에는 예민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계속된다면 무조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명상이 아니다. 명상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면 이미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기분이 더 좋아지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판단 기준은 아주 중요하다. 화가 점점 준다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