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떠오르면 손가락에게 글을 맡기면 된다. 누구나 이런 글쓰기를 희망하지만 영감은 내 마음 같지 않다. 그래서 글쓰기를 즐기고픈 사람이라면 영감에 구애받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섞어서 글을 이끌어 낸다. 첫째 방법은 말로 시작하는 거다. 내 말도 좋고 타인의 말도 좋다. 담벼락에 쓰인 말도 좋고 광고 카피도 좋다. 말에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일단 말을 쓰면 그 말이 자극하는 마음이 글로 튀어나온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주운 말들을 잘 간직했다가 곱게 꺼내서 들려준 이야기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다. 사람들은 이 책에 열광했다. 말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사람들은 말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나 보다.
둘째 방법은 내 생각을 먼저 쓰는 것이다. 영감이 담긴 생각도 좋고 단지 글을 이끌어내기 위한 생각도 좋다. 생각을 적다 보면 자기를 돌아보고 정리하게 된다.
“타인의 삶으로부터 뛰어내렸다.
내가 되기 위해 나는 혁명이 필요했다.”
수많은 조직 인간의 가슴에 불을 지핀, 그러나 너무나 빨리 이 세상을 떠나버린, 자기 혁명을 부르짖었던 구본형 작가는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말했다. 그는 확실한 죽음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으로 변화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글에는 그의 생각이 진하게 배어있다. 스스로 증명해낸 살아있는 생각을 글로 빚어준다.
마지막 세 번째는 구체적 현상을 적는 것이다. 일상에서 관찰하거나 겪은 일이어도 좋고 역사적이거나 시사적인 현상이어도 좋다.
“냉담한 세상에서
아무런 잘못 없이 스스로를 질책해야 했던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우린 잘못이 없다고.”
개인적으로 도덕경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데, 도덕경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온 책이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이다. 고등학생 조카가 읽던 책을 우연히 펼쳐보고는 떨림을 참을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 숨 막히고 갑갑하지만 뭐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작가는 시원하게 마침표를 찍어 준다.
상황에 따라 글이 기다리고 있는 길목은 달라진다. 막연히 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하나의 길목만을 지킬 이유가 없다. 그때그때 에너지가 흐르는 대로 글을 시작하면 된다. 글은 일단 시작하면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다. 글쓴이를 최초의 독자로 만들면서 스스로 진화한다. 우리는 글을 시작하고 글은 우리의 삶을 시작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