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놀고 싶어.”
4살 첫째 아이는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뽀로로의 현실 모델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한 순간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다. 인생의 최대 유일의 목적은 ‘재미’다. 문득 궁금해진다. 읽기와 쓰기의 세계에서 재미는 어떤 모습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노트북을 켜고 앞으로 글자가 담길 빈 공간을 대면한다. 빈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다. 무슨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아무런 힌트도 없다. 미지와 마법의 공간이다. 하얀 공간을 통해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끝없는 가능성의 장에 접속한다. 글이 쏟아져 나오면 글을 통해서, 글이 나오지 않으면 응시하는 나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마음을 본다.
읽기와 쓰기의 관계는 세상과 나의 관계와 같다. 내가 먼저 있고 나서야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행위이고, 읽기는 내 밖으로 나가는 행위다. 세상에 대한 관심은 자기 존재의 느낌에서 비롯된다. 읽기를 위한 읽기는 필요 없다. 읽기는 쓰기를 전제할 때, 쓰기의 필요에 부름 받을 때 생명력을 얻는다.
먼저 써라. 백지를 대면하라. 백지 앞에 서는 것은 벼랑 끝에 서는 것과 같다. 벼랑 끝에서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추락의 가능성은 삶의 의미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백지 앞에 서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과 미래를 개척하려는 마음의 경계를 만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미래를 사는 방법이다.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 순간 세상이 궁금해진다. 삶에 재미가 떨어진다면 자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깊이가 얕아져서 세상을 느낄 에너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기를 만나기 위해 글을 써라. 글을 쓰다가 세상이 궁금해지면 책을 들어라. 글이 쓰이기 전의 빈 공간을 대면하는 것, 이것이 나를 만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