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두막 May 31. 2021

내 글의 한계

“모든 위대한 모험가와 탐험가는 손실 공포 본능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글쓰기는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아무 글도 쓰지 않는 것이다.”


 시작을 회피하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보다 나빠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괜히 시작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다. 그래서 자꾸만 준비가 되면, 완벽해지면, 위험에 대한 방어가 충분해지면 시작하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부의 본능을 쓴 브라운스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브라운스톤이 말한 글에서 ‘투자’를 ‘글쓰기’로 바꿨다. 내가 몇 년 전부터 글을 쓰면서 지우거나 숨긴 이유도 손실 공포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기억이나 사적 경험, 감정과 상상을 세상을 향해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을 자아낸다. 불안과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들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 오직 글쓰기만을 불안의 분출구로 삼으며 말이다.”


 장석주 시인의 글을 읽으며 내 생각을 확인받고 위안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그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라는 책에서, 글쓰기는 그 자체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나처럼 소심한 인물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법도 함께 제시한다. 그냥 그 두려움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으라고 말이다. 두려움도 에너지기 때문에 이왕이면 생산적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어쩌면 나도 불안해서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나는 깨달은 이도, 성숙한 이도, 큰 결과를 이룬 이도 아니다. 나는, 깨닫기 위해, 성숙하고 성장하기 위해, 삶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변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혹 내 글을 읽는 이도 나와 함께 깨닫고, 성숙하고,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변화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 글은 스스로 하는 최면이다. 세뇌다. 원하는 나의 모습을 글로 그리며 뇌에 생각회로가 만들어지길 기다린다. 이미 살아낸 이의 글이 아니어서 내 글에 모순도 많고 허점도 많다. 그 모순과 허점을 수용하고 계속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아직 아니라는 마음의 소리가 오랫동안 손을 묶어 놓았다.


 “깨달으면, 성숙하면, 삶이 변하면, 그때 자신 있게 써. 아직 널 보여줄 때가 아니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넌 아직 네 삶에 확신도 없잖아.”


 마음은 자꾸만 나를 멈춰 세웠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지 않으면 결코 ‘그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성숙하기 위해, 변화하기 위해서는,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안으로 집어넣을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꺼내야 한다.


 글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내는 길이다. 그동안 나 혼자 끙끙대는 걸로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견딜 수 없이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나지만, 그 변화의 에너지는 외부에서 받아야 한다. 글로 닦은 길은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전해준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글쓰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성장시킨다. 내 글의 한계가 누군가에겐 진솔함이 되고, 적절함이 되고, 공감이 되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밌게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