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제부터 퇴폐적으로 품격 있게 살기로 했어.”
“근데 왜 퇴폐적이에요?”
“기존의 룰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뜻이지.”
아내와 난 우리만의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모토가 ‘퇴폐적으로 품격 있게’다. 놀러 온 처제에게 말했더니 ‘퇴폐적’이란 표현이 임팩트가 있었나 보다. 우린 너무 고분고분하게, 착한 사람으로, 말 잘 듣는 어린이로, 삶의 불안에 대해 자신을 탓하며 곪아가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에 대해 누구를 혹은 사회의 어떤 면을 탓할 시기는 지났다. 이젠 우리 스스로 우뚝 서야 하는, 탓하는 에너지마저 아까워하고 원하는 인생을 여는데 써야 하는, 치열하게 탐구하고 나를 찾아야 하는, 퇴폐적이란 시선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만의 시선으로 우리의 품격을 갖춰가야 하는 나이다.
“점성술에서 토성은 어린 시절의 꿈과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에 대한 자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엄격한 행성이에요. 즉 토성 리턴은 독립된 운명체로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시기예요. 이 시기는 환상과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나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시기예요. 잘 활용한다면 인생의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는 얘기죠.”
우리는 여전히 ‘몸 어른, 마음 어린이’로 살고 있다고 이서윤은 그의 책 더 해빙에서 말한다.
“마흔이 되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큰 혼란을 겪을까? 흔히들 ‘중년의 위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를 나는 ‘중간항로’라 부르고 싶다. 이 시기에 우리는 삶을 재평가하고, 때로는 무섭지만 언제나 해방감을 주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설 기회를 갖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
중간항로는 고통스럽지만 ‘자기감’을 바꿀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선사한다. 중간항로로의 초대에 응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삶의 페이지를 인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우리 스스로 불러낸 삶의 거대함을 감당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홀리스는 그의 책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에서 중년의 양면성에 대해서 말한다. 여러 가지 혼란을 겪는 중년의 위기는, 반대로 자기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마법 같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생에서 나의 좌표를 확인해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살아진 것 같다. 발버둥은 누구보다 심하게 쳤지만 그것은 결코 수영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체적인 몸짓이 아니었다.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 모른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처럼 생존이 아닌 생활을 하고 싶다. 늦게라도 수영을 배우고 싶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이제 퇴폐적으로 살아도 되는 나이다.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외부의 힘들을 자각하고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과감하게 'NO'라고 외치자. 닦여진 길에서 벗어나 타인의 곱지 못한 시선을 받더라도, 나를 찾은 기쁨으로, 내가 닦은 삶의 품격으로 여유롭게 지나칠 수 있도록 내공을 기르자. 나는 퇴폐적으로 품격 있게 사는 연습을 통해 주인으로 사는, 영원한 현재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