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파는 소녀

성냥팔이 소녀의 변주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시골에서 카페를 하는 연우는 여느 때처럼 빵 구울 재료들을 사러 읍내에 나갔다. 한파 때문에 연일 뉴스가 시끄러워서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연우는 항상 들르는 가게에 들어가며 손을 비볐다.

“안녕하세요. 정말 춥네요.”

“어서 와요.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왔어요? 이런 날은 그냥 쉬지 그래요. 우리도 이제 막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는데. 허허.”

인상 좋은 할아버지는 연우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추위를 뚫고 돌아가야 할 연우를 걱정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그래요. 조심히 가요.”

연우는 재료들을 차에 싣고 바로 히터를 틀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운 것 같았다. 연우는 원래 시골 사람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직장도 도심에 위치한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때까지 중요해 보이던 것들이 일순간에 흔들렸다. 그때부터 연우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작년 가을의 어느 날, 연우는 지금의 시골 마을로 들어와 조그만 카페를 열었다. 향이 좋은 커피와 고소한 빵이 주 메뉴였다.

사실 연우의 시골행을 반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들 연우를 위한다며 도시에 남기를 바랐다. 그만큼 연우의 시골행은 힘든 결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시골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소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만큼 감동적이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시골길을 달리던 연우의 눈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간혹 산짐승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서 운전하는 연우였다. 그런데 이번은 뭔가 달랐다. 사람 같았다.

“이런 곳에, 더군다나 이런 날씨에, 사람일 리가 없을 거야.”

의심을 품고 연우는 차를 돌려 되돌아갔다. 연우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한 왜소한 여자 아이가 얇은 옷을 입고 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연우는 급하게 차를 세우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여기 근처에 사니? 난 저 너머에 카페 주인인데. 여기서 뭐 하니?”

“......”

아이는 가만히 얼굴을 들어 연우를 바라 볼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한 열 살쯤 됐을까, 어린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새 연우도 추위를 잊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 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부모님은?”

“......”

연우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가야 하나?’

연우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 더군다나 이 추위에 어린아이를 혼자 두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읍내 파출소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읍내 파출소는 작고 조용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경찰관이 아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말을 못 하니?”

연우가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를 찾기 위한 몇 가지 질문에 아이는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찰관은 점점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어쩌죠? 어린아이를 밤새도록 여기에 둘 수는 없는데.”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제가 데려가서 재울게요. 안정이 되면 사정을 얘기할 거예요.”

연우는 카페로 돌아가는 길에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자기 얘기를 꺼내놓았다. 아이는 가끔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아이의 신원파악에는 아무런 진도도 나가지 못했다. 연우도 점점 아이가 편안해졌다. 아이의 평온한 얼굴과 신비한 눈빛, 그리고 자연스러운 몸짓은 연우가 카페에서 기르는 고양이처럼 따뜻했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고양이의 갸르릉 거리는 소리처럼 연우를 기분 좋게 했다.

연우가 카페일을 하는 동안에 아이는 한쪽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연우의 서재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에게 편하게 사용하라고 말해 두었던 터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고는 잠시 카페를 둘러보다 아이의 노트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그 손님이 울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슬픈 일을 당한 그 손님은 아이의 글을 읽는데 갑자기 가슴이 탁 터지더라고 얘기했다. 한참을 울고 나서는 밝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슬픔이 가슴에 응어리져 있었는데, 이제 시원해졌어요. 커피랑 주인장 보고 왔는데, 히히, 글도 파시는 줄은 몰랐네요. 동네방네 소문내야겠어요. 호호”

이게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연우의 카페에서는 커피뿐만 아니라 아이의 글도 메뉴에 추가되었다. 아이는 평소에 지어두었던 글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손님의 사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시 한 편을 지어주기도 했다. 손님들이 놀란 건 둘째 치고, 연우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연우는 오래전부터 작가를 동경해왔다. 시골 카페에서도 서재를 만들어 놓고 꾸준히 글을 쓰는 중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글에 대해 애정이 큰 편인데, 아이의 글을 보고는 놀람을 넘어 신비로움을 느꼈다. 연우의 카페는 입소문을 타고 나날이 유명해졌다.


“감사합니다. 연우네 마음 카페입니다.”

“안녕하세요? 방송국입니다. 마음 카페가 워낙 유명해서요. 저희가 인터뷰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얼떨결에 연우는 인터뷰 약속을 정하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방송을 타면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기가 쉬워질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는 변함없이 테이블에 앉아 노트에 뭐라고 쓰고 있었다. 연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참 신비로워. 저 아이와 나는 무슨 인연일까? 저 아이를 볼 때면 항상 마음에 구멍이 생기는 기분이야. 어딘가 내 마음 바깥으로 통하는 구멍 말이야.’

며칠 뒤 드디어 방송국 인터뷰 날이 왔다. 연우는 가게를 청소하고 나름 깔끔한 옷으로 갈아 입고 아이에게도 다시 한번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뷰 이야기를 듣고도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연우를 바라보는 고요하고 따뜻한 눈빛이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소라 PD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연우입니다.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게가 참 예뻐요. 사람들이 좋아할만하네요.”

“아, 고맙습니다.”

“연우씨만큼이나 유명한 ‘글을 파는 소녀’도 한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

“방금 전까지 저 테이블에 있었는데, 음,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마 서재에 갔을 거예요.”

아이가 테이블에 없을 때는 대부분 연우의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연우는 아이를 데리러 천천히 서재로 향했다.

“어, 이게 뭐지?”

서재에는 아이가 없었다. 돌아서려던 연우의 눈에 조그만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잘 있다 가요. 책 읽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았어요. 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뭔지 아세요? 제가 이 곳에 와서 만난 사람들이에요. 따뜻한 사랑을 채우고 갈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부탁할 말이 있어요. 절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세요. 해오던 대로 계속 글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주세요. 이제 시간이 다 됐네요. 이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연우는 정신없이 방을 뛰쳐나갔다. 밖은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방송국 차량의 흔적 외에는 카페 밖으로 나간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눈을 맞고 있는 연우의 뒤로 방송국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연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흘러내리려 할 때, 조그만 목소리가 연우의 가슴 한편에서 들려왔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세요. 포기하지 않으면 항상 잘 될 거예요. 이젠 정말 안녕!”

눈은 하늘도 땅도 사람도 모두 하얗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