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뿌리

꽃은 말없이 미소 짓게 하고 바람은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네.

* 말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내가 상태 안에 있느냐 없느냐다. 상태 밖의 메마른 생각에서 하는 말은 상대도 위하지 못하고 나를 메마르게 할 뿐이다.

->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디서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그런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해 늘 답답함을 안고 살았다. 특히 교육의 상황이 나를 숨 막히는 지경으로 몰아갔다. 교과서 안의 말과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삶의 불일치가 나로 하여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를 헷갈리게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의 인격이 너무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의사소통은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위다. 여기에는 두 층의 메시지가 작용한다. 메시지와 메타 메시지다. 메시지에 대한 메시지를 메타 메시지라고 한다. 우리는 말을 할 때 다양한 메타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다. 얼굴 표정, 손짓, 행동, 눈빛, 목소리 등이 말이라는 메시지에 대한 메타 메시지다. 에머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격이다.

심리학적으로 메시지와 메타 메시지의 불일치가 정신분열증의 원인이라고 한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정신분열을 안고 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현실 속에 처한다. 이런 불일치를 일으키는 사람은 대부분 '어른'이다. 그들 스스로 정신분열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도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다.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메시지와 메타 메시지의 불일치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로 이 둘을 구분한다. 처음에는 불일치에 놀라고 혼란스러워한다. 점점 무뎌지다가 이 불일치를 해석하는 나름의 눈을 키운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불일치를 삶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옹호하고 스스로 그런 불일치를 생산하는 지경에 이른다. 요즘 말로 '꼰대'다.

나의 기준에 의하면 어린이와 어른의 구분은 나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어린데도 어른스러운(불일치의 면에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성인임에도 어린(불일치에 혼란스러워하는 면에서) 사람들이 있다.

이제 의사소통 측면에서 사회를 이해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이로 남아있으면서 계속 부적응자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불일치를 생산해야 할까? 사회에 부적응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불일치를 생산하는 삶으로는 영혼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메시지와 메타 메시지, 어린이와 어른, 사회 적응자와 고유한 영혼,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이원론적인 에너지장 안에서는 결코 갈증을 씻어낼 수 없다. 거기에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삶은 그 둘을 초월한 '흐름' 속에 있다. 나를 떠나야 내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은 '상태' 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판단하고 이끌려고 한다. 한 마디로 마음은 죽기를 거부한다. 마음이 '상태' 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릴 때 비로소 삶이 그 자연스러움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