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예의

나는 내 삶에 너무 무례하지는 않은가?

* 장애물을 신의 사랑의 표현으로 볼 때 성장이 가능하다.

-> 나는 성장을 간절하게 바라왔다. 그만큼 나 자신에게 불만족했고 열등의식과 자기 연민에 허덕였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 나이에는 이 정도의 모습이어야 해'라고 걸어놓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항상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나는 내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몸과 마음과 머리에 정말이지 실망하고 지쳐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삶의 장애물로 여겼다. 극복해야 할, 이겨내야 할, 바꿔야 할, 새롭게 갈아치워야 할 나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장애물을 단지 장애물로만 바라봤다. 긍정적인 생각, 감사하는 마음, 수용적인 자세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지쳤고 세상을 증오했다.

나는 모순에 빠져있었다. 성장을 간절히 바라면서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모순에 숨 막혀했다. 누가 문제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상황을 탓하는 것은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상황을 누가 경험하는가? 내가 경험의 주체로서 주도권을 되찾을 때 비로소 성장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장애물은 다른 말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축복이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면 발전의 시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핸드폰과 mp3를 따로 가지고 다니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때 오직 스티브 잡스만이 이 불편함을 느끼고 발전을 위해 덤벼들었다. 우리는 장애물을 수용하고 넘어가면서 진화해왔다.

장애물을 자기 삶의 상승과 도약을 위한 기회와 희망으로 볼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을 성숙한 인격의 얼굴로 본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이중주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존재적으로 불가능하다. 힘든 오르막을 따로 떼어내서 보는 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오르막은 그 안에 내리막을 품고 있다. 오르막은 계속해서 내리막을 보라고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존재다.

나는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기도한다.

"이 어려움은 신의 축복이고 사랑이다. 나는 이 어려움을 통해 성장하고 더 나은 삶을 맞이할 것이다."

"어려움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려움은 이미 지나갔거나 벌어진 일이다. 진정으로 성장을 원한다면 성장이 가능한 태도를 갖춰야만 한다.


두 손 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