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정말 그것인가?

나는 보고 있는가 생각하고 있는가?

* 관념은 현존이 아니고 현존은 관념이 아니다. 관념은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것이고 현존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다.

-> 관념 혹은 개념은 양날의 칼이다. 바로 위에서 여러 개념 즉 '관념' '현존' 등을 사용해서 개념 사용의 함정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개념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근래에 '관념에서 현존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종종 한다. 한 번은 산책을 하는데 앞에 아주 젊고 에너지가 넘치면서 늘씬한 자세로 걸어가는 여성을 보았다. 내 마음은 당연하다는 듯 이 상황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역시 젊음은 좋아. 에너지도 좋고 몸매도 좋고 매력이 넘치잖아. 아, 이렇게 여성을 쳐다보면 안 되지.'

예전 같으면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그리고 봐야 하는 대로 대충 보고 그 관념으로 그 여성을 덧씌워놓고는 그 경험이 진짜라고 믿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마음을 '상태'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 봤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여성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아 보였고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나는 비로소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이는 대로 본 것이다.

우리는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세상을 개념에 담아 놓고는 그 개념으로 세상을 봤다는 착각을 한다. 사실은 세상을 본 게 아니라 개념 속에 담아놓은 자신의 환상을 경험한 것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개념은 생존의 수준을 높여주는 아주 효율적이고 추상화된 도구다. 지금까지 그 부정적인 면에 대해 얘기했다면 긍정적인 면은 무엇일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모두 세상에서 설명해놓은 것이다."

한 번 실험해보라. 가만히 앉아서 주위를 감각해보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라. 아마 금세 개념적인 생각이 끼어들 것이다. 이건 냉장고고 이건 책이고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고 새가 지저귀고... 이 모든 것이 세상이 설명해놓은 것들이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개념을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느낌을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로 만들 수 없다. 여기에 개념의 한계와 더불어 필요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개념이나 인식만큼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각 경험하는 세계가 다르고 그 넓이와 깊이도 다르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하고 사색하고 견문을 넓히며 부단히 개념의 질과 양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현존이라는 말은 분명 개념이지만 이 개념을 통해 가고자 하는 곳은 분명 개념적인 곳이 아니다. 유토피아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우선 내가 느끼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개념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개념을 통해 세계를 넓히지만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