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이라는 세대의 휘발
어제 간만에 식사 자리였습니다. 아내의 모친상을 잊지 않고 챙겨주시니 저도 모르게 다정함이 올라왔습니다. 어제 대화중에 한총련이라는 한 세대가 휘발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공공적 활동을 할 사람들이 부재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평을 듣고, 한총련은 친북이라는 이념, 폭력이라는 방법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데 둘 다 실패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96년, 97년을 겪으면서 한총련은 이념과 방법론 모두를 혁신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념적으로 한총련을 주도한 세력은, 식민지 민족해방이론에 기초한 국가재편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핵심적인 가치였던 조직입니다. 199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민족국가 건설이 식민지시대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그런 국가로는 베트남이 있습니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이후 군부라는 우익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편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민족국가를 건설한 것은 박정희이기 때문이지요. 이때문에 민족운동세력은, 우익이 주도한 1960 - 1992년 까지의 대한민국 발전 과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외세로부터 해방을 주도하였어야 할 저항운동 세력이 민족국가 건설과정을 다시 재장악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셈입니다. 민족주의 세력은 이 저항의 에너지를, 군부독재라는 민주주의를 왜곡한 세력에 대한 저항운동과 결합함으로서 1980년대의 주도적인 사회운동세력이 되었습니다.
1996년97년 한총련 운동의 문제점은, 이와 같은 한반도의 민족문제 정체성을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서 북한이 모범적인 정답이라고 평가했던 편향성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서 북한도 그 자체의 모순과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민족운동세력은 이 지점에 있어서도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타당합니다. 더구나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대한 대결의식이 일반적인 상수로 자리잡은 국가에서 대중운동을 하겠다는 조직에게, 이념적으로 북한을 추종하는 선택은 그 자체로 역린을 건드린 오류를 범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 내 우익세력에 의해서 북한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만연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으려는 북한바로알기 운동이 가지는 건강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걸 넘어서 북한을 한반도 민족문제에 있어서 정답을 보유한 정치조직으로 평가함은 대한민국 대중운동조직으로서 출발부터 오류였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1996 - 97년은, 이제 민족국가 건설운동이라는 시대염원을 넘어서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경제적 성장이 결실을 보던 시대였고, 이중적으로 냉전의 종식과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관계가 완전히 변화되던 시대였습니다. 민족국가 건설을 염원한 세력은, 그 시각이 1945년을 전후한 시점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시대정신을 집행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하겠지요. IMF사태가 터졌을때 미국은 대한민국의 반미운동을 가장 염려 하였지만, 대중운동세력은 금모으기 운동을 했을 뿐입니다. 외환위기에 개입한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은행을 설립해서 한국을 지원하려고 하였지만, 미국의 저지로 한국을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이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폭압적 기구로서 국가라는,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국가기구에 대한 정체성은 점차로 선거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기구로서변화를 맞고 있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보호하는 집단인 군부와 경찰에 대해 사수대를 조직해 투쟁하는 행위는, 80년대에는 국민들로부터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90년대에는 ‘저건 불법행위가 아닌가’라는 인식으로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변화에 대해서도 무감각한 채, 운동이 제도화 되는 것 자체가 일종의 ‘투항’이라는 도덕적 감수성만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려고 했던 민족운동에 대한 지향을, 일순간의 정세분석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불가능한 미션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사람의 사상과 실천은 그렇게 쉽게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자신과 동료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변화하지 못했냐고 비난하는 것은(요새 민경우가 그렇게 하고 다닙니다만), 사회운동이라는것이 - 그리고 그 사회운동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활동가라는 존재가 -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는 행동에 불과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사회운동은(민족주의 운동도 그 일환일 뿐이고)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거대 목표 아래에서 움직일 때에만 정당성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저는 민경우의 행동에서 동료 시민에 대한 어떠한 애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살면서 계속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무 정치일정에 따라 일희 일비 하지 말고, 민족국가 건설운동과 그 방법론이 어떤 이념으로 대체되어야 하고, 어떤 방법론을 채택해야 하는지 자기 생각을 정돈하는 것이 여전히 필요할 것입니다. 동료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정의당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석하고 해결할 집단에 대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답을 가진 세력이 없는데 선거만 계속 돌아오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허망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한총련 #민족주의 #북한 #군부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