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출근은 했지만, 오늘도 퇴근은 멀었다

by 기억너머

‘지금 일어나야 정시에 출근하는데…’

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수십 개의 알람을 끄고 또 끄다, 마지막 경고음에 밀려 겨우 몸뚱이를 일으킨다.

아침은 늘 너무 빨리 온다.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거울을 본다.
피곤함이 그대로 새겨진 얼굴.
“오늘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자.”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출근 준비를 하며 퇴근을 꿈꾸는 나는, 올해로 18년 차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버텼지만, 학교는 여전히 ‘교육의 현장’이라기보단, 권력의 피라미드다.

이사장은 아부 잘하는 사람만 예뻐한다.
교장은 그 눈치를 보며 결정 하나도 자기 뜻대로 못 내리고,
교감은 그 아래에서 감정으로 학교를 움직인다.
정규 교사들은 자기 연차를 방패 삼아 앉아서만 지시한다.
그 아래, 늘 불안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기간제 교사들이다.

사립학교의 순리는 단순하다.
“윗사람에게 납작 엎드리면 오래 남고, 고개를 들면 잘린다.”

그게 정답인 걸 알면서도, 나는 아직 완전히 엎드리지 못한다.
아직은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
아직은 교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버스 안. 창밖으로 스치는 햇살이 예쁘다.
좋아하는 음악이 귓가를 스친다. “오늘도 잘해낼 거야. 이겨내보자.”
스스로를 세뇌하듯 속삭인다.

하지만 학교 건물이 보이는 순간, 심장이 살짝 아찔하다.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가식’을 입는다.

“교감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녀는 오늘도 완벽한 표정이다.
늘 대접받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공주형 관리자’라는 말이 꼭 어울린다.
누군가를 배려하거나 대신 수고해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걸 다 남 시켜놓고 늘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다 했어요~”

그녀의 말엔 현실이 없다.
감정으로 시작해 감정으로 끝나는 업무. 논리와 책임은 늘 부재중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 말이 나오면, 내 머릿속은 자동으로 반박문장을 생성한다.
‘아뇨, 그건 법적으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태도 문제’가 된다.

오늘 아침, 교감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내게 슬쩍 떠넘기려 했다.
18년 차 감각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건 교감선생님 업무이십니다.”
그 한마디가 문제였다.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교장실로 내려갔다.

진짜… 또 시작이네.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미주 선생님이 그거 하세요.
교감선생님은 지금 일이 많으시대요.”

뚝—

전화를 끊는 순간, 내 혈압도 함께 올랐다.
교장실의 공기는 언제나 그랬다.
논리보다 눈치, 공정보다 위계. 결국 이곳은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힘이 있는가”가 기준인 곳이다.

교무실로 돌아와 서류철을 펼친다.
내 옆자리엔 25년 차 ‘꼰대 교사’가 앉아 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말을 곱게 못 해.
교감선생님이 얼마나 마음이 여리신데~”
그는 늘 이런 말을 한다.
자기는 교감에게 충성하듯 인사하면서, 정작 수업은 늘 ppt만 돌린다.
학교는 이런 사람들이 장기 근속으로 버틴다.
그게 ‘노하우’라 불린다.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러게요~ 그래도 다 잘 지나가겠죠.”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한다.
그래, 다 지나가겠지. 그런데 왜 매일이 이렇게 반복될까.

점심시간이 되면, 교감은 자신이 시킨 일의 결과물을 보고도 말한다.
“이건 내가 다 챙겨놨어.”
그리고 나는 또, 모른 척 웃는다.
이사장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교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가 서로 속이면서, 학교는 ‘잘 굴러가는 척’한다.

오후 세 시.
커피를 들고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데, 교감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손에는 또 다른 서류 한 장이 들려 있다.

“미주 선생님, 이것도 좀 같이 해주실래요?”

그녀의 미소는 이상할 만큼 평화로웠다.
나는 직감했다.
이게 오늘의 진짜 시작이구나.

퇴근까지 남은 시간, 아직 멀었다.
출근은 했지만, 오늘도 퇴근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