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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밀 Jun 03. 2023

노숙하다는 말

노숙과 노티

한 아이로부터 내가 결혼했을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몇 년 전에 내 인생 계획에서 결혼을 잠정적으로 빼놓은 터였다. 절친한 친구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면 결혼 생각이 없다가도 '나도 가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던데 내 주변 친구들 중에는 아직 결혼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결혼과 심리적 거리가 먼 나로서는 나름 신기하게 들렸던 말이다. 


집에 가서 아빠에게 물어봤다. 오늘 본 학생이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나이때 애들한테 결혼한 거 같은 느낌은 뭘까.


아빠는 노숙해 보이는 거라고 했다. 


거실에 갈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담아 아빠를 흘겨봤는데 아빠는 야구를 보느라 내 눈빛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경계에 있는 나이의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이 충격과 황당함을 어떻게 다 표현하지. 아니, 왜 나를 공격(?)해. 얼마전부터 살까 말까 고민했던 화장품을 내 카드가 아니라 아빠 카드로 사버려야겠다는, 평소라면 철없다고 안 했을 생각도 했다. 


나중에 야구가 끝나고 나서 항의를 하니, 아빠는 노숙하다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라고 했다. 안정감이 있다, 나이보다 성숙해 보인다는 말이라고. 


-늙어보인다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 


나는 아빠의 말에 내가 단어의 뜻을 곡해하고 있었던가 하며 반쯤 넘어간 상태였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사전에 ‘노숙하다’를 검색해 보았다.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왔다.


 ‘노숙하다’ 

1. 오랜 경험으로 익숙하다.

2. (사람이) 자기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음.. 내가 오해했군. 


내가 생각한 뜻은 아마 노티난다..라는 말 정도의 뜻이었던 듯하다. 근데 내 반응을 돌이켜 보니 노티라는 단어에게 약간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단어에게 인격이 있다면 그 단어도 무안해 했을지 모르겠다. 괜히 자기 싫어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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