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어 13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괜히 걱정, 근심, 불안이 차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랫동안 연락 안하던,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아이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뭘 준비해야 할까 물었다. 초등 입학 전에 해야 할 과제를 우리 애만 못하고 들어갈까봐 걱정되었다. 연산? 구구단? 영어? 책읽기? 무엇을 해야 조금은 든든한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묘안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글쎄..’하고 뜸을 들이더니, ‘색칠하기?’ 라고 덧붙였다. 색칠하기라고? 학교라는 정규교육과정에 처음 입문하는 데 준비해야할 과정이 색칠하기라고? 유치원 때 허구헌날 했던 색칠하기라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이기에 깔깔대며 이야기했다. ‘너 예나 지금이나 약간은 헐렁하구나. 여기 학구열 높은 지역이야. 색칠하기 말고 다른 건 없어?’ 뭔가 거창한 걸 기대했나보다. 친구는 심플하게 ‘글쎄. 다른 건 없는데..’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는 곰곰히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색칠하기를 잘 못한다. 아직도 손의 근육이 부족하고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강해 색칠해 놓은 걸 보면 선을 삐져나간 부분도 많이 보이고, 허옇게 남아 있는 빈 공간들도 많다. 학교에 막상 입학하고 보니 그 무엇보다 색칠하기를 많이 했다. 1학기는 거의 종이접기, 만들기, 색칠하기의 반복이었다. 덧셈, 뺄셈보다 색칠하기가 우리 아이에게는 더 어려운 과제였다. 색연필을 꼭 쥐고 선을 삐져 나가지 않게 꼼꼼하게 색칠하는 것. 가장 단순해보이지만 아이의 손 근육, 집중력, 인내력을 요하는 과정이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역시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구나 깨닫는다.
아이를 낳고 돌볼 때도 그랬다. 첫째는 너무 어려웠다. 아무 준비도 안된 나에게 빽빽 울어대는 아이는 버거웠고, 아이를 먹이고 돌보고 재우는 일은 어려웠다.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잘하고 싶은데 엄마라는 역할은 나에게 벅차기만 했다. 잠을 잘못자는 아이를 재우려 육아책을 찾았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했다. 15개월의 영아가 1시간 15분의 낮잠을 자고 1시간정도 깨서 놀다가 다시 1시간 15분의 낮잠을 잔다면 그 스케쥴을 따르려 무조건 애를 썼다. 세상의 중심이 아이였다. 너무 안아주면 손탄다는 말에 아이를 눕히고 재우려 애를 썼다. 아이와 새로운 세상과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축났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아이를 재우는데 급급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해주지 못했다. 둘째는 첫째를 키울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아이들의 기질 자체가 달라서 둘째 키우기가 더 수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둘째를 대하는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첫째 신경쓰랴 집안일 하랴 둘째만의 스케줄을 따로 만들 수 없었다. 그 맘 때 아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공부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울면 안아주고 방긋 웃는 모습에 예뻐해주고 조금 울어도 그냥 두고. 그 순간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돌이켜 보니 순간순간을 살았던, 둘째를 키우던 시간이 아이의 낮잠 시간을 계산하던 첫째를 키울 때보다 더 아이와 함께하는 삶 이었던 듯 하다. 육아의 기본도 하루 몇시간 낮잠재우기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그 오롯한 시간을 즐기고 사랑하고 무럭무럭 잘 커나갈 거라고 믿고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영어의 기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영어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공부를 하는 일은 고달프고 지겹다. 어떤 공부든 그렇다. 공부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 있지만, 그 즐거움을 느낄 때까지는 지겹고 고단한 과정을 견뎌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 잘할 수 있는 방법,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영어 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아니 모든 삶의 기본이 아닐까. 때로 귀찮고, 재미없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도, 나 영어 좋아하잖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나에게 최면을 걸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라고 되뇌여본다. 외국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이해하고 싶고, 공부는 지겹지만 해보고 싶고 꾸준히 하고 있다면, 그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기본은 한 게 아닐까. 기본이 갖추어져 있다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과정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수월하게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과정에 도달하지 않을까 한다. 현재 아이의 영어가 또래보다 월등하지 않다해도, 남들 다 읽는 영어책을 못 읽는다 해도, 잘하고 싶어하고,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 이거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영어가 싫어 재미없어 라는 마음이 누구든 마음에 슬금슬금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다독이고 이건 무슨 뜻이지, 이 구절 한번 외워볼까. 이거 한번 따라해볼까 하는 마음이 결국은 모든 일의 시작이 아닐까. 영어를 공부할 때도 너무 거창하게 말고, 그냥 기본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긍정의 마음을 또 한번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