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어 12
두 아이 모두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외국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수영을 하지 못한채 튜브를 가지고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찌저찌 떠있지만 발차기를 못하는 느낌이랄까.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긴장했다. 기다리던 임신에 기쁘기도 하다 두려워하다는 반복하며 임신 10개월을 보내고, 첫째를 출산했다. 첫째를 낳고 정신없이 키웠다. 육아도 살림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고, 서툰 내 모습이 싫었다. 아이와 하루종일 있는 시간이 갑갑해 문화센터, 놀이터 같은 곳들을 전전했다. 명목은 아이의 경험을 위해서였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고 무서웠다. 또래 아이 엄마들과 친해진 후에는 숨통이 조금 틔였다. 매일 만나 교회 라임 센터를 갔다. 점심먹고 놀이터에 가는 일과들을 계속했다. 친한 사람 중 한 명이 둘째를 가졌다. 그날 생애 첫 활활 타는 질투를 느꼈다. 질투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둘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스스로도 이렇게 둘째를 갖고 싶어하는 줄은 몰랐다. 내 마음을 몰랐다. 그 다음 달 둘째가 찾아왔다.
둘째를 임신하고는 첫째를 뉴질랜드 유치원에 보냈다.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돌봐야 우리말을 더 잘하는거 아닌가 슬그머니 나타나는 죄책감을 억누르고 보냈다. 주변 친구들이 다 유치원에 가니 우리 애도 가야할 것 같았다. 나도 여유시간을 갖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했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나를 보면 뛰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감사했다.
첫째가 5살, 둘째가 100일쯤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첫째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었다. 조리있게 말하고 야무진 한국 아이들이 놀랍고 무서웠다. 고작 5년 외국에 있다 들어왔을 뿐인데도, 한국에서의 육아는 또다른 시작 같았다. 모든 시스템이 낯설고 서툴렀다. 아이 둘을 데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무섭고 두려웠다. 불안한 엄마였다. 갓 한국에 온 아이에게 영어까지 들이밀 배포는 없었다. 한국 생활을 따라잡는 것 만으로도 벅찼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배우는 영어에 만족했다.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를 해대는 아이 모습이 그저 천재같았다. 가르치면 한번에 잘할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뉴질랜드에서 접했던 영어들이 어딘가 아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한번 가르치면 주루룩 터져나오리라 믿기로 했다.
둘째가 어린이 집에 가면서 점점 여유 시간이 생겼고, 아이 공부에 더 관심을 쏟게 되었다. 특히 영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잠수네 영어 라는 책을 접하면서 어느정도 아이 영어공부에 대한 가닥을 잡게 되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 잠수네 영어는 흘려듣기와 집중듣기를 큰 틀로 잡는다. 흘려듣기란 영어노출시간을 최대로 늘려주는 것. 영어로 티비를 보고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러운 듣기환경에 노출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집중듣기란 소리에 집중하며 읽기를 시작하는 단계이다. 책을 읽어주는 소리에 집중하며 단어를 가리켜 결국엔 단어와 문장, 책을 읽을 수 있는 준비과정 인 듯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영어영상보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워낙에 티비보는 것에 환장하는 아이들이라 영어로라도 티비를 틀어주면 너무나 좋아라했다. 때로 러시아어로 나오는 티비를 보면서도 깔깔대며 웃는 아이들이기에 이것이 언어습득에 도움이 되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화면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 있으나, 흘려듣기의 과정이겠거니 감사히 생각하려 하고 있다. 가끔씩 흘려듣기한 문장들을 써먹을 때로 있지만 (Wait for me 같은 자주 나오는 짧은 구문들), 흘려듣기의 효과는 눈에 바로 드러나진 않는 듯하다.
집중듣기는 좀 더 힘든 과정이었다. 7세정도부터 집중듣기를 시작하려 하였으나 나도 바쁘고 아이도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흐지부지 되었다. 책상에 앉아 때로 집중듣기를 시키려 하였으나, 대충 눈치로 음원에서 나오는 단어를 가리키고, 때로 음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 하는 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짧은 책들은 집중듣기후 읽곤 했지만 너무 시간대비 효과가 낮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꾸준히 하면 언젠가 늘긴 하겠지만, 집중듣기에 산만하게 앉아 있으면 효과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학교에 올라갈 때 즈음 되자 마음이 술렁였고, 주변 분위기도 술렁였다. 다들 여기저기 영어학원 테스트를 보러가느라 바쁜 듯 했다. 유치원까지는 원에서 영어를 가르쳐주지만 1,2학년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째는 영어학원을 보내야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테스트를 보러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시험을 본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시험을 잘 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직 파닉스도 떼지 못했는데, 시험을 잘 보기는 무리일 듯 했다. 아이의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왔을 때 그 불안감에 내가 아이를 또 쥐잡듯 잡고 실망한 모습을 보일까 두려웠다. 나의 마음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내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될까 두려웠다. 겉으론 쿨한 척 하지만 집에선 아이를 옭아매는 모습이 슬그머니 나올 때면 내가 나도 무서웠다.
아이의 학교 입학은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학교는 유치원과 다르다는 말에 엄마인 내가 더 긴장했다. 나의 불안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아이는 어찌저찌 학교에 다니고 있다. 잘다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잘다니는게 맞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하지만, 이제 나의 불안이 아이를 삼키지 않도록 하자고 계속 다짐한다. 아이를 믿고 힘든 일이 생겨도 그것을 발판으로 발전하리라는 끝없는 믿음을 가져보기로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지금 둘째는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운다. 유치원에서 배운 표현을 써먹을 때면 첫째때처럼 ‘얘는 천재인가봐’ 하는 고슴도치 마음이 나온다. 유치원에서는 매일 유치원 영어프로그램을 집에서 들을 것을 당부하신다. 매일매일이 쌓여야 아이의 귀가 트이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틀어주려하는데, 이 별일 아닌 일도 힘들때가 있다. 하원 후 이런저런 일정들을 휩쓸려가다보면 15분 영어틀어주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새로운 내용이 아니니 아이도 점점 시들해진다. 열심히 듣지 않는 모습을 보면 꿀밤 한대 꽁 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익숙해지고 생활의 일부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틀어주곤 한다.
첫째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리딩게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보고 문제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아직 수준이 높지 않아 조금만 집중하면 맞출 수 있는 문제인데도 아이는 항상 도와달라고 한다. 틀리는 걸 무서워한다. 옆에 같이 앉아서 아이가 가리키는 답에 맞다 아니다 정도의 힌트를 주고 있다. 문제를 푸는 아이를 보니 아이가 알고있다고 생각한 것들도 사실은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니었다는 걸 본다. 파닉스의 기본개념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보다. 그래도 아이는 문제를 풀어가며 조금씩 개념이 잡혀가는 것이 보인다. 패드로 하는 프로그램이라 딱히 공부한다는 생각도 안든다고 한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리딩게이트 공부는 제일 어렵다고 하다가도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은 공부라고도 한다. 리딩게이트를 하면서 쉬운 리더스북을 하루 한권씩 읽히고 있다. 아이의 교육을 내츄럴하게, 한듯안한듯 스며들게 해야겠다는 야심이 있었을 땐 리더스북, 영어전집류에 대한 은근한 거부감이 있었다. 틀에 짜여진 리더스북보다는 내용이 풍부한 영어동화책을 보여주는게 더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했었다. 리더스 북 전집을 접하고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인기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다. 재미있어하니 다행이다. 즐겁게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단계별로 잘 되어있어 학습하기에도 좋다. 주요단어들, 많이 쓰이는 어휘들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 읽을 수 있는 단어들이 많아지고 있고, 아이도 성취감을 느끼는 듯하다. 지금은 내가 2번 먼저 읽고 아이에게 읽어보게 한다. 아이가 읽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찬반 의견이 있는 듯 하다.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 수 있으니 스스로 읽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좋다는 지론도 많다. 하지만 그냥 집중듣기만 하니 아이가 제대로 보지 않는 것 같아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했고, 아직까지는 아이도 큰 어려움 없이 잘 따라와주고 있다. 다음에 읽을 책들을 기대하는 모습에 안심한다.
지금까지의 아이 영어학습이 좋은건지 아닌건지 사실 모른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몇 년 후에나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내 아이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고, 별거 없는 하루하루가 모여 산이 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