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마구 쏟아지던 비가 오후쯤 되니 제법 잠잠해져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두 등원 시키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손톱에 오호라 네일을 붙이던 중이었다. 큰 아이 유치원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찍혔다. 원에서 오는 전화는 언제나 긴장된다. 별일 아니길 바라면서 숨을 한번 훅 들이마시고 전화를 받았다.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아이는 잘 있어요.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으시면 우리 잠깐 얘기 좀 나눌까요?” 순간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무슨 일일까?’ 쭈뼛쭈뼛 시간 괜찮다고 말하고, 옷을 갈아입는 내내 무엇 때문일까 생각했다.
유치원에 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나 곱씹어 보았다. 그날 아침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라 아이들이 우산을 정리하고 들어가야 했다. 우산을 접어서 돌돌말아 딸깍 똑딱이 버튼을 누르는 일이 손에 힘이 없는 우리 아이에겐 어려운 과제였다. 한참을 아이는 유치원 문앞에서 우산을 돌리다 다른 곳을 멍하게 바라보다 다시 우산정리를 하다를 반복했다. 유치원 담장 밖에서 나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우산을 들고 우두커니 아이가 우산정리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님, 이제 가셔도 되요.’ 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나서야 발길을 뗄 수 있었다.
아이가 손이 느려 연습을 더 하라고 부르나 보다. 집에서 나도 할만큼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혼자서 다짐에 다짐을 하고 유치원으로 갔다. 선생님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나를 질책도 비난도 하지 않고 그냥 ‘아이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궁금하고 해서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만 툭 눈물이 떨어졌다. 소심한 나는 당당하게 얘기하긴 커녕 한마디 말도 못하고 울어버렸다. 선생님이 오히려 당황하셨다.
아침에 아이가 우산정리 하는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계속 보고있는 나를 보며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 겠다고 선생님은 생각하셨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데는 엄마와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하고 제가 많이 도와주지도 않고 스스로 하게 하는데도 아직 서투네요 하고 내 말을 이어나갔다. 유치원 선생님께서는 ‘네 그럼 이제 엄마랑 정서적 독립만 하면 되겠네요.” 라고 하셨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정서적 독립? 그건뭔가? 나름 육아서도 많이 읽어보곤 했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말은 못들어봤는데?
선생님은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지 못하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어요. 아이가 느리면 그 만큼 고난도 겪고 하겠지만 그 고난을 바탕으로 또 더 커지고 할 거예요. 아이의 아픔에 공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건 필요해요. 하지만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한몸이 되어 아파하면 아이는 독립할 수 없어요. 힘드셔도 아이를 독립시키려 하시고 어머님의 감정에서 분리시키셔야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의 충격은 잊히질 않는다.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살아낼 것이다. 나는 아이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아이가 잘 못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아이 옆에서 더 기를 썼다. 내 잘못인 것 같아서. 정작 아이는 괜찮은데 나의 프레임에 아이를 가둬둔건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유로웠다. 내 일은 아이를 그냥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일이구나. 이것 아이가 해내야 할 아이의 과제구나 아이가 이 과제를 해 낼 수 있으리라 믿고 도와주는 것이 내 일이구나를 깨달았달까.
그 후 아이는 초등학교에 갔고 아직도 엎치락 뒷치락 하며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아이의 독립은 어렵다. 어디까지가 도움이고 어디까지가 간섭인지 잘모르겠다. 그래도 믿어주기 사랑하기를 기반으로 나는 나의 삶을,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도록 응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