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이란 무엇인가

나름 '추석이란 무엇인가(김영민)' 칼럼의 패러디

by 김삼일

가족들과 얼굴을 붉히고 싶은가. 서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대치 상태에 있고 싶은가. 그렇다면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통장에 있는 돈 80%에 달하는 패키지 여행권을 끊어라. 돈을 많이 쓰면 많이 쓸수록 가족들의 행동이 사사건건 맘에 안들고, 내가 이러려고 이 돈을 썼나 하는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4박 5일로 괌 여행을 다녀왔다. 섣부른 결정이었다. 퀘스트 깨기 같은, 메뚜기떼처럼 밀려 들어오는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느라 피폐해진 몸과 마음은 이미 이성적인 사고를 할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하나투어 패키지, 괌 가족여행, 다양한 액티비티로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에메랄드 빛 문구를 그만 손가락이 클릭해버렸다. 일정 기한 내 무료 취소라기에 일단 그냥 눌러버렸다. 일단 그냥 눌러버리니 괌에 가는 일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물을 무서워하는 쫄보 가족이라는 사실이 마음 한 구석 찜찜하게 남아있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설레임 반 걱정 반 두려움 반 반반반반이 얽히고 섥힌 채로 일단 여행을 떠나는 날짜는 닥쳐왔고, 여권을 다시 발급받고, 짐을 싸고, 도란스를 사고, 주차 대행을 예약하고, 생각나는 대로 여행 관련 일들을 처리했다.


돈을 쓰며, 시간을 쓰며 바랬던 것은, 마음속으로 그렸던 그림은, 아마도 따뜻한 태양 아래 신나게 노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선글라스 쓴, 과일주스를 마시는 어른들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다 못싼 짐꾸러미를 마저 챙기며, 곤히 자는 아이들을 깨워 차에 태우면서도, 나의 상상이, 나의 로망이, 나의 꿈이 괌에 가면 실현될거라 생각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의 상상과 아주 동떨어진 여행은 아니었다. 날씨는 좋았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수영을 했고, 스노쿨링을 했고, 물놀이터에서 물을 맞으며 놀았고, 탁구를 쳤고, 포켓볼을 쳤고,테이블 축구를 했고, 농구를 했으며, 돛이 달린 배를 탔고, 카약을 탔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어른들도 느긋하고 평안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마음 한구석이 허하고, 찜찜한 건 무엇 때문일까. 나는 재미도 없는 마피아 게임을 무릎높이의 수영장에서 억지로 했기 때문일까. 2만원 넘게 구입한 스노쿨링 마스크를 1번 밖에 못써서 일까. 오후 3시도 안되어 피곤하다면 호텔방가서 유튜브 보자고 징징대던 아들놈이 얄미워서일까. 실내 스노쿨링하다가 다리가 긇혔다며 자긴 원래 하기 싫었는데 엄마 때문에 억지로 한거라고 눈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울던 아들에게 빈정이 상해서일까. 나름 잘 놀아놓고 발가락의 모래가 안빠진다고 투덜대는 모습들에 실망해서일까. 높은 곳의 워터슬라이드가 무섭다며 안타겠다는 아이들에게 타고오면 티비 보여주겠다며 살살 꼬시던 내 모습이 구차해서일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서일까. 아니면 기대만큼, 돈쓴만큼 잘놀다오지 못했다는 생각때문일까.


그럼에도, 찜찜하고 퀭한 마음에도, 돌아오는 길 괌 재밌었다 라고 말하는 가족들에게 나도. 라고 억지로라도 미소 지으며 대꾸하는 나는 누구인가. 내 맘대로 괌 여행을 예약하고 가족들을 끌고 가 놓고 더욱더 신나게 놀지 않는 가족들에게 실망하는 나는 누구인가. 아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하나씩 해보는 경험들이 아이에게는 필요했다는, 잘했다는 타인의 말에 위안받고,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엄마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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