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는 순간

아무튼, 영어 4

by 김삼일

호주애서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라 비행기 안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개학의 설레임을 담은 수다들이 여기저기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비행기였다. 뉴질랜드에 착륙하려던 비행기는 난기류로 순간 덜컹덜컹했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비행기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질 무렵 비행기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뒤이어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야호! 신난다! 난기류 만났다!!' 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행기는 또다시 파티 분위기에 휩싸였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뭐지. 이 끝없는 해맑음은.


지진을 겪었을 때도 이랬다. 그때도 여행을 마치고 노곤한 몸으로 남편과 소파에 앉아있기와 눕기의 중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갑자기 쿵 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흔들렸다. 눈이 번쩍 떠졌다. '지진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다행히 거기서 멈췄다.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겪어본 지진에 몸과 마음이 동요되었다. 이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없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집안에 있을 수 없어 무작정 나갔다. 아파트 복도에서 만난 옆집 할아버지에게 지진을 느꼈느냐 물었다. 느끼지 못했다는 답을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지진이 있었대'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평화로웠다. 집앞 호프집에서 방송소리가 들렸다. "방금 지진이 지나갔답니다!" "오예!" 다들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식 웃음이 났다. 지진이 맞았나보다. 별일 아니었나보다.


돌 경의 아이를 데리고 피지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한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잠들었다. 10키로 정도의 아이를 안고 짐을 주섬주섬 챙겨 세관줄로 가서 섰다. 뉴질랜드 세관은 깐깐하기로 유명해, 집까지 돌아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긴 줄 뒤에 섰다. 세관직원중 한명이 우리를 불렀다. 이쪽으로. 우리에게 가장 짧은 줄로 가라고 손짓했다. 가장 짧은 줄에서 세관 검사를 받았다. 보통은 가방을 샅샅이 살펴보지만 아이가 있으니 간단한 질문으로 끝냈다. "세관에 걸리는 물건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관검사는 그 질문으로 끝났다. 아이를 안고 있으니 세관통과가 빨랐다. 아이를 귀히 여기는 문화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까다로운 세관에서도 아이어드밴티지를 받을 줄은 몰랐다. 마지막 직원의 한마디 “Welcome Home”. 이방인인 우리도 여기를 집이라 불러주는 구나. 여기서 우리는 환영받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아이를 낳고보니 아이에게 친절한 문화에 더 반해버렸다. 아이들이 울어도, 아이가 할일이 우는거지 하고 말해주는 이웃. 누가봐도 곰보인 아이를 귀엽다 얼러주는 친구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 하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의 영어 사용자들은 느긋하고 젠틀했다. 불안과 걱정의 모습보다는 여유와 유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한없는 해맑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한 적이 많았다. 그들이 제공하는 탄탄한 복지 때문일까. 아니면 아시아에 가서 영어라도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물론 만난 사람들 중에는 깍쟁이도, 재수없는 사람도 많았다. 백인이라고 아시아인을 깔보는 사람도 많았고, 정부에서 대주는 보조금만 타먹는 게으른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매너와 여유가 깔려있었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눈이 마주치면 생긋 웃으며 “Hi”라고 인사하고, “Can I help you?”라고 습관적으로 물어봐주었다.


한국에서 엄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 실수할까 걱정하고, 눈치보는 모드로 지내온 나에겐 별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해맑을 수 있을까. 이 해맑음에 반하고 두근거린다.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오니 우리나라에도 사실 친근한 사람은 많았다. 아이는 몇 개월이냐고 물어봐주는 할머니, 아이를 예뻐한다며 빽빽 우는 아이 옆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비행기에서 만난 대학생. 그동안 나는 내가 만든 성벽에 갇혀 몰랐던 거였다. 다들 나 같을 줄 알았다. 다들 나처럼 개인의 이익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곁은 없는 줄 알았다. 견문을 넓혀보니 조금씩 보인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자란다. 적어도 이웃에게 인사할 줄 아는 여유, 다른 사람에게 베풀줄 아는 여유. 놀라고 걱정하기보다 별일아니야 괜찮아 라고 넘길수 있는 여유를 쌓아간다. 이렇게 영여를 배우는 부수효과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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