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기억

아무튼, 영어 3

by 김삼일

알쓸신잡을 보는데 패널들이 각자의 어릴 적 행복한 기억들을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공유하고 있었다. 유희열씨는 엄마 등에 업혀 형을 배웅하던 기억, 유현준 씨는 황금박쥐 볼펜을 만들었는데 엄마가 너무너무 잘만들었다고 폭풍칭찬을 해준 기억, 유시민 씨는 어릴 적 놀다 잠들면 아버지가 안아서 이불 위로 옮겨 준 기억을 이야기했다. 소박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쌓인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내게도 생각할 때마다 미소지어지는 기억들이 있다.


유시민 씨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우리 아빠도 어디선거 쓰러져 잠들어 있으면 항상 이불 위로 옮겨주었다. 경상도 출신의 과묵하고 무뚝뚝하고 자식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게 아닐까 생각되는 아빠였지만, 어디선가 구겨져 자고 있는 나를 편히 자라며 이불로 옮겨줄때의 아빠는 세상 다정한 아빠였다. 그게 너무 좋아서 잠들지 않았는데도 잠든 척 한적도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역시 잠든 척 하고 있는 나를 들어올리는데 아빠가 매우 힘겨워하며 비틀거렸다. 들킬까봐 눈을 꼭 감았지만 휘청대며 나를 옮기는 아빠 품안에서 알았다. 이제 자는 척 하는 건 그만해야할 나이가 되었다는 걸. 이제는 스스로 이불로 가서 자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아빠는 만성비염을 갖고 있었다. 5분에 한번씩 킁 소리를 내며 다녔다. 3층 빌라로 올라오는 복도에 킁 소리가 들리면 동생과 놀다가도 ‘아빠다’하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참 무섭고 엄한 아빠였는데도 아빠가 오는 소리가 왜 그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다다다 현관으로 달려가 다녀오셨어요 크게 외치면 아빠는 신발을 벗고 양말을 우리에게 주었다. 빨래통에 넣으라고. 그것이 우리 집의 일과였다.


엄마는 동생과 나를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 시켰다. 목욕탕에 들어간, 수영장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우리는 수영을 한답시며 물장난을 치곤했다. 엄마는 항상 '올림픽 수영 금메달 선수, 이번 올림픽 수영 금메달 선수!'를 외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우리는 질세라 엄마를 인터뷰했다. "따님들이 어떻게 수영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까? 어디서 주로 연습했습니까?" 그러면 엄마는 "네! 우리 딸들은 어릴적부터 목욕탕에서 피나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라고 답해주었다.


우리집은 거의 매일 국과 밥, 밑반찬이 주가 되는, 특별할 것 없는 한식을 먹었다. 어느 점심, 엄마가 우리 오늘은 양식을 먹어보자며 오뚜기 옥수수 스프와 빵으로 점심을 주었다. 식탁에 꽃무늬 접시에 떠진 옥수수 수프와 빵을 먹으니 외국에 있는 것 같았다.


동네 동생의 자전거를 빌려타며 자전거를 익혔다. 항상 한번만 타보자 하며 구걸했다. 동생은 때론 자기 자전거를 맘껏 탈 수 있게 해주었고, 어쩔 땐 얼른 내리라며 성화를 부릴때도 있었다. 두발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했는데도 그게 재미있어서 그 동생이 다른 놀이 할 때 까지 졸졸 따라다니며 자전거가 빌 때를 노렸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대며 자전거를 타다가 어느 순간 자전거가 스르륵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갔다. 그 다음 날인가 아빠가 새자전거를 사서 아파트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자전거는 인어공주가 그려진 분홍색 자전거였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다녔고 많이 잃어버렸다. 신기하게도 잃어버릴 때마다 동네 친구가 내 인어공부 자전거를 찾아 끌고왔다. 언제 인어공주 자전거를 마지막으로 탔는지 잘 모르겠다.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3층에서, 5층에서 누구야 들어와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엄마는 주로 맨 마지막에 부르거나 아예 우리를 부르지 않는 편에 속했다. 나와 동생은 놀다가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한 친구가 들어가면서 '이제 나 들어갈래 집에가서 샤워하고 저녁먹을래' 라고 말하며 총총히 사라졌다. 샤워를 매우 싫어해서 매번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는 나였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나도 집에 들어가서 샤워할래' 라고 말해버렸다. 집에 오는 내내 진지한 얼굴로 동생은 '진짜 샤워할거야? 진짜로?' 라며 다그쳐 물었다. 충격적이었나보다. 나는 답을 얼버무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도 굉장히 하얀 편이었지만 동생은 얼굴이 아주 하얗고 갈색머리를 가졌다. 거기다 어디서 들었는지 앨리게이터, 지브라 라는 말을 때때로 해댔다. 그럼 지나가는 아이들은 '와, 쟤 외국앤가봐' 라며 감탄했다. 그게 뭐라고 난 또 으쓱 했다.


초3무렵, 레오나르도 미술학원에 다녔다. 마르고 커트머리에 안경을 쓴 레오나르도 미술학원 원장선생님은 나보다 두살인가 많은 아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10년정도 (아니면 5년?) 사시다 돌아와 한국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시는 듯 했다. 원장 선생님이 들려주는 미국 이야기를 두근거리며 들었다. 미국 아이들이 불고기를 좋아했다는 이야기, 불고기보다 김치가 더 맛있다는 원장선생님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치를 먹어본 미국 아이의 얼굴이 새빨게 졌다는 이야기 등을 들으면 설레였다. 미술학원에서 미술보다 영어배운 게 더 기억에 남는다. 헬로우, 하우아유, 파인쌩큐, 애플 등을 진지하게 따라했었다. 선생님이 너 발음 좋구나 하는 얘기를 깜깜해진 밤 이불속에서 계속 되뇌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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