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어 6
수다쟁이 DNA를 가진 사람이 부럽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키가 작고 눈이 큰 친구가 수업시간에 계속 이야기를 해서 선생님께 혼난적이 있다. 한두번 주의를 받아도 그 친구는 멈출 줄 몰랐다. 여러 번의 주의 끝에도 입을 다물지 않자, 결국은 교실 뒷편에 가서 서있게 되었다. 그 친구를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수업시간내내 떠들고 또 떠들고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그 친구가 내게는 미지의 대상이었다. 한편으론 부럽기까지 했다. 나는 타고나기를 묵묵 DNA를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친구들과 놀고 싶으면서도 같이 놀자는 말을 잘 못하고, 같이 놀 친구를 찾아 헤매는 나의 아이가 답답하면서도 순간 웃음이 났다. 네가 그 기질을 어디서 물려받았겠니. 나한테 받았지 싶어서. 어릴적부터 뚱한 아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이 없고,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잘 모르는 아이. 어린 시절의 나는 주로 얌전하고 착한 아이로 평가받았지만, 사실은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거였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멍하고 가만히 있는 아이, 그게 나였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책은 많이 읽었다. 그래서 공상 속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남들이 모르는 만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하인이 있어. 나는 우리 집 공주야. 우리 집에는 다양한 과학 실험 도구들로 가득차 있어. 나는 그 실험도구들도 연기가 펑펑 터지는 실험을 하지 등등 입에 담긴 낯부끄러운 공상들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현실감각은 있어서 이 머릿 속 생각들을 말로 내뱉진 못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딱히 다른 사람과 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예의 바른 성격도 수다쟁이가 될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까하는 걱정, 이렇게 말하면 민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나의 입을 굳건히 잠갔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A와 같이 앉아 있게 되었다. 침묵이 부담스러워 억지로라도 이런저런 얘기를 생각해보고 꺼내게 되었다. 우리 집 인테리어 한 이야기를 꺼냈다. 값을 너무 안줘서인지 화장실 인테리어는 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할 수 있으면 다시하고 싶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침묵이 싫어서 혼자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다. 얼마 뒤 친구 B와 통화를 하는데 B가 최근에 사귀게 된 C의 험담을 했다. 자기집 인테리어 했다는 얘길 나한테 왜하나 몰라. 자기집 자가라고 자랑하는 거 아니니? 순간 헉 했다. 내가 침묵이 싫어 생각없이 한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거부감 생기는 빈정상하는 이야기일 수 있구나 했다. 역시 날씨 얘기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건가. 요지는 어떤 얘길 하고 어떤 얘길 하지 말아야 할 지를 구분할 센스는 없고, 경각심은 넘쳐나서 수다떨기 너무 힘든 성격이라는 것이다.
수다 떨기 힘든 기질이 친구 사귀기 편할 수 없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항상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은 내게 부담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주로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묵묵히 쫓아다니거나 착함으로 승부를 보았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넉살도 조금씩 생기고, 침묵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줄 아는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친한 사람들과의 수다는 즐겁고, 때로는 얘기하고 싶어 못견디는 나를 보는 것이 놀랍기 까지 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스러운 대화, 세련된 대화는 어렵다.
영어를 배울 때도 그렇다. 영어를 배우다 보면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강렬히 한다. 외국인친구와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며 외국 제스춰도 써가며 대화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없던 대화 센스가 외국에 간다고 생길 리가 없다. 영어 스피킹 시간엔 주로 사형제도나 체벌의 찬반 여부만을 배우지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는지, 어떻게 하면 한 사람과 세련되게 대화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에서 대화가 단절되었고, 대화가 단절되는 이유도 그저 나의 영어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어 개인 과외를 하는 동안 나의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선생님인 Jill이 나에게 바로 옆에 있던 타월을 말아 던졌다. Hi 하며 타월이 날아왔고, 다시 대답을 하면서 타월을 던지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Hi하고 대답하며 타월을 던졌다. How are you? 다시 타월이 날아왔다. I'm fine, and you? 하면서 타월을 다시 던졌다. 너 어제 뭐했니? 타월이 날아왔고, 영화 봤어 하며 다시 타월을 던졌다. 대화의 과정은 타월을 혹은 공을 주고 받는 과정이다. 타월을 받을 수만도, 공을 받을 수 만도 없다. 서로 주고 받아야 계속 이 게임을 할 수 있다. 공이나 타월을 던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받고, 다시 던질 말들을 준비 해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보고 무엇을 물어볼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어학 연수 기간에 만난 한 선배는 항상 사진 몇 장을 작은 앨범으로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녔다. 언제든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준비 하는 것이라고. 그 땐 뭐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했지만, 할 말이 없을 때 그 사진은 좋은 대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친해진 한국인 언니와 영어로 하는 대화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키위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할말이 없어요. 어떤 말로 사람들과 이야기 해야할 줄 모르겠어요. 그 때 언니는 아이가 생기면 궁금한 게 많이 생긴다며 출산을 장려했다. 참으로 아이가 생겨나니 이야기 거리가 많이 생겼다. 길가다 만난 사람과도 우리애 자랑을 늘어놓게 되었고, 남의 애는 몇 개월인지 언제부터 걸었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수다쟁이 DNA없이 태어난 나에게 아이 외의 주제는 여전히 젬병이다.
마흔이 넘어가는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새로 사귀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일이 어렵고 버겁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먼저 우리 만날까 하는 약속 정하기가 참 힘들다. 먼저 관계를 시작하면 이 관계가 재미있어야 하는 책임을 내가 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어렵다. 하지만 또 누군가를 사귀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대화의 즐거움, 수다의 즐거움. 깔깔대며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그 과정의 맛을 알아버렸다. 그러기에 여전히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무수히 연습해야 한다. 공동의 관심사를 찾고, 그 관심사에 대해 서로 묻고 대화하는 과정을. 오늘도 나에겐 한국어로도 어렵고, 영어로는 더 어려운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