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어 8
생애 첫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처음으로 접해본 사교육에 마음을 뺏겼고, 검고 하얀 건반에 매료된 7새 아동은 작디작은 멜로디언으로 온 힘을 다해 10번씩 피아노 숙제를 끝내곤 했다. 이에 감명 받은 부모님은 거금을 틀여 피아노를 사주셨지만….피아노에 대한 흥미는 바이엘까지였다. 갈수록 흥미가 떨어졌고, 피아노 학원 안 다니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댔지만, 지금 그만두면 후회한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완강했다. 무려 6년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러고도 진도는 겨우 체르니 30번까지 나갔다. 너 지금 그만두면 후회해 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그때 피아노를 그만 둔 것을 절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도 피아노를 잘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나도 피아노 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 피아노 그만둔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내가 길을 잘 닦아놓아서 두 동생들은 나만큼 피아노를 오래 다니진 않았다.
그 후에도 초등학교 땐 미술학원과 속셈학원, 중학교 땐 종합보습학원, 고등학교 땐 단과반 학원을 다녔었다. 학원을 다니는건 싫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좋았고, 학원에 가면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다. 학원 끝나고 편의점 가서 사먹는 컵라면도 맛있었고, 가끔씩 노래방에 같이 가는 친구들도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보통은 그냥 가야하는 것 같아서 갔다. 공부해야하니까, 안가면 안될거 같으니까,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다니니까.
대학 입학 후 한 친구가 영어회화학원을 같이 다니자고 했다.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누가 같이 하자고 말해준 게 너무 좋아서 덜컥 그러겠다고 했다. 종로에 있는 영어회화학원 8시에 다니기 위해서 아침잠 많은 내가 6시에는 눈비비고 일어나야 했다. 학원 끝나고 나서 먹는 맥모닝도 좋았고, 비싸서 가끔 큰맘먹고 먹는 버거킹 치킨버거는 더 좋았다. 학원수업 끝나고 친구랑 같이 버스타고 학교로 들어가는 길도 좋았다. 무엇보다 영어 학원에 다니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외국사람과 영어로 말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때 영어선생님은 젊은 영국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사실 뭘 배웠는지는 잘 기억안난다. 쭈뼛쭈뺫 다른 한국인 학생들과 영어로 자기소개하던 기억, 풋풋하게 예뻤던 선생님, 사진으로 보여준 영국 시골 속 선생님 집과 풍경들은 기억이 난다. 그냥 영어 한 마디 해보겠다고 학원에 다녔고, 그게 재미 있었던 것 같다. 친구는 두달여 학원을 같이 다니다 그만두었고, 나는 그 이후로는 혼자서 다녔다. 같은 학원을 계속 다닌건 아니었다. 지겨워질 즈음, 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종로의 YBM, 파고다 등의 이름난 학원들을 전전하며 다녔다. 영어 회화를 위한 학원을 다니는 게 좋은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고, 그걸 학원을 통해 대리만족한 느낌이다. 학원에 가면 외국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다녔던 여러 학원들 중 커리큘럼이 기억나는 곳은 삼육어학원이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인가 6~8개월 가량 다녔는데, 6단계까지 단계별로 올라가는 이 학원은 6단계를 모두 수료하면 기업에서도 알아주는 인재가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소문의 사실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학원은 주요 구문 외우기를 기본으로 하여 외운 구문을 회화로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매일 듣기 30분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했다. 확실히 다른 어학원들보다 탄탄한 커리큘럼이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4단계까지 다니다 듣기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fail후 학원 다니기를 그만 두었다.
뉴질랜드에 거주할 무렵에는 영어로 너무 말하고 싶은데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없어서 community centre에 갔다. 수업료는 2불 정도로 매우 싼 편이었고, 커리큘럼 같은 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편이었다. 그냥 자원봉사하러 온 할머니 선생님이 뉴스 기사나 본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글을 들고와 수다떠는 느낌. 하지만 그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 꽤 오래 다녔다. 특별한 야심을 갖고 다닌 건 아니었고, 너무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에, 하도 말을 안해서 입에 거미줄이 생길 것 같은 나날들에 대한 숨구멍이었다. 한달여 가량 뉴질랜드에 놀러온 동생도 여길 다녔었다. 동생은 심지어 걸어서 1시간 정도 되는 이곳에 걸어서 다녔다. 지루한 뉴질랜드 일상에 몸부림치며.
가끔은 학원에 다녔던 그 시절이 그립다. 30이 된 이후로 웬지 파릇파릇한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 있기 부끄러워 학원에 가질 못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건 꼭 학원에 가야하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예전만큼 영어 학원을 다니진 못할 듯 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어줍잖고 어벙벙한 20대의 내가 그립다. 그리고 괜시리 종로를 방황하는 20대를 보면 응원해주고 싶다. (요즘 20대는 뭐랄까 당당하고 활기차고 똘똘해보여 괜시리 무섭기도하고, 나의 응원 따위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속으로 조용히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