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영어 9
빈둥거리며 인생의 8할을 보낸 듯 하다. 학창시절 얌전한 학생이었다. 튀지도 않고 주목받지 않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실상을 알고보면 그냥 맹한 아이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주로 멍때리고 있었다. 그 당시 교실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만 있으면 딱히 문제될 일은 없었다.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한 농담을 이야기할 때면 속으로 놀랐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런말도 했었나’ 하고. 지금도 내가 수업할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는 아이들을 보면 신기하다. 쟤는 뭔데 내 말을 이렇게 열심히 듣지. 반대로 멍때리고 있는 학생들에겐 아주 감정이입이 된다. 시험기간엔 바짝 공부했고, 성적은 반에서 10등~15등 정도. 잘하지만 살짝 아쉬운, 그런 어정쩡한 등수. 인생 좌우명은 중간만 가자.
열심이던 시절도 있었다.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중학생 시기를 거쳐 고1까지는 그럭저럭 시험성적이 나오곤 했다. 고2가 되고 문제집을 풀어보니 맞는 답이 없었다. 분명 내 기준으로 나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인데 왜 이렇게 많이 틀리는 건지.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현실감각이 살며시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그냥 자뻑모드였구나. 나는 사실 공부 안해도 척척 잘하는 천재는 아니었구나 라는 주제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독해문제집을 풀었다. 다행히 아무리 많이 틀려도 그닥 좌절하지 않았다. 이게 시험문제도 아닌데 많이 틀리면 어때 라는 마음가짐으로 소나기가 내리는 문제집을 끝까지 풀어냈다. 읽고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추고. 틀린답이 왜 틀렸는지 체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의 무대뽀 공부는 하면 할수록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를 거의 다 틀렸던 첫번째 문제집에 이어 두번째 문제집에는 한두문제 맞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갈수록 많아지는 동그라미에 신이 났다.
실제로 영어교사인 지인은 수능영어공부엔 별다른 지름길이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수록 실력은 오르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단, 기본적인 문해력을 학생들이 갖추고 있다는 전제하에. 아무리 영어를 공부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학생들을 본다. 국어실력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별로 없는 고등학생이 문해력을 높이겠다고 그제서야 다짜고짜 다양한 책들을 섭력할 순 없다. 찬찬히 문제를 풀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독해문제 하나를 풀고, 답을 맞추고, 왜 이것이 답인지를 유추해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스스로 답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파악하지 못할 경우에만 해설지를 참고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영어만큼, 특히 고등영어만큼 학원비가 아까운 과목도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문제를 풀고 답을 내어가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니까. 아무리 봐도 요리보고 조리보고 째려도 보고 사전을 다 찾아가며 해석을 해봐도 이 답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에만 학원이나 과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그렇게 영어공부만 평소에 하다 고3이 되었다. 고2 겨울방학부터는 정말 공부만 했다. 오히려 하나만 해야하니 고3 신분이 되니 잡다한 생각이 들지 않아 편했다. 책을 보고 문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오답노트 정리는 정말 신의 한 수 였다. 내가 틀린 것을 노트 하나에 붙여놓고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패턴이 보였다. 문제 출제유형, 내가 실수를 잘하는 문제, 나의 지식이 부족한 문제들이 보였다. 아빠는 어릴 적 늘 말하곤 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평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너희도 그런 즐거움을 맛보라고. 사실 아빠도 평생 공부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지금의 나도 평생 공부하고 그런 사람은 못되지만 공부의 즐거움을 조금은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자라는 느낌. 내가 성장하는 느낌. 이렇게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느낌. 뿌듯한 느낌.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느낌. 입시의 성공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해 주었다. 나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그 후로 얼레벌레 대학생활을 하다가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느낀 점은 메타인지의 중요성이다. 영어교육학 공부를 하면서 메타인지에 대해 처음 접했던 듯 했다. 당시 선생님은 메타인지를 ‘공부하는 자신을 위에서 쳐다보는 능력’이라고 설명하셨다. 단순한 공부가 아닌 공부를 계획하고 자신의 공부능력을 점검 및 실행해나가는 능력을 메타인지라 표현할 수 있겠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며 다행히 똘똘한 친구와 스터디를 하게되었다. 우리는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들을 각자 출제하고, 그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는 방식으로 스터디 그룹을 하였다. 똘똘한 그 친구는 출제경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스터디를 할 때면 ‘이 문제는 좋은 문제야’, ‘이런 문제는 안나와’ 라는 식의 확신에 찬 조언을 하곤 했다. 이제 임용고사는 ‘이 이론의 이름은 무엇인가’같은 단순암기문제, 지식의 유무를 판단하는 문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영어로 설명된 이론을 이해하고 이를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가 나온다구 했다. 내가 봐도 기가 막힌 설명이었다. 기가 막힌 출제경향 파악이었다. 나는 아무리 공부해도 이렇게 출제경향을 파악하고 확신에 차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해 그 친구는 임용고사에 합격했고, 나는 불합격했다. 나의 불합격은 너무너무 슬펐지만, 몇날며칠을 울고불고 하고 앞날에 대한 막막함으로 벌벌 떨었지만, 그 친구는 정말 붙을 만 했다. 질투보다는 너 같은 애가 붙어야지. 너는 정말 합격할 만해. 너와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많이 배웠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소심하고 주변머리가 없어서 이 긴 문장을 축하해로 짧고 어색하게 전하긴 했다.
임용고사를 재수하면서는 기간제교사로 일을 병행했다. 처음엔 기간제 교사자리를 알아봐주고, 일할 것을 은근슬쩍 강요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임용고사에 붙을 것을 믿어주지 않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사회에 나간다는 것이 두려웠다. 을의 입장으로 경험하게 될 사회가 무서웠다. 그냥 공부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는 달다라는 그 고리타분한 격언은 이번에도 참이었다. 기간제교사로 일한 경험이 없었다면 두번째 임용고사에도 합격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은 내 뒤죽박죽인 지식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문법적으로 약하던 내가 아이들에게 설명해줄 방법을 찾다보니 저절로 공부가 되었다.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지금도 공부잘하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많이많이 가르치라고 말한다. 가르치다보면 내 생각이 정리된다. 눈으로 보는 공부는 직접하는 공부를 이길 수 없고, 직접하는 공부는 가르치는 공부를 이길 수 없다.
이 시절, 임용고사 재수시절 자주 우울해지고, 자주 울던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20대, 앞날이 얼마나 두렵고 미래가 얼마나 막막하니. 엄마는 젊어진다고 해도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의 나도 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 두렵고 막연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이 또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가슴 아프기 보다 반짝거리며 남아있다.
지금의 나는 완전히 열심히 산다. 하루에 빈둥거리는 시간이 너무 없다.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살림을 한다는 것,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끝도 없는 블랙홀에 나를 던지는 것 같다. 나는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나에게 남는 것은 없는 것 같아 가끔 허망하기도 하다. 주부가 되기 전 나를 위한 시간을 이렇게 전투적으로 보냈다면 훨씬 더 발전한 나를 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빈둥거림이 그 하릴없이 보냈던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