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계절이었다. 6톤 트럭으로 안돼서 급하게 1톤을 더 불러 아이 옷장이랑 자전거들을 싣고 내려왔을 때.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도시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었다. 서울을 떠날 생각도 우발적이었지만 살 곳을 정하는 것도 그랬다. 지도를 보니 서울 가는 버스 정류장이 가까이 있고 근거리에 공원과 광장, 미술관도 있다! 갑천인지 유등천인지 천변 따라 자전거를 타도 좋을 것 같았다.
생각만큼 자전거를 많이 타지는 못했지만 일 년 가까이 이 길 따라 출퇴근을 했다. 약국일은 생소하고 힘들었다. 서툴러서 실수가 많았고 그래서 더 긴장하고 그러다 보니 또 실수하고. 한참 어린 약사들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무. 그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천변 따라 난 그 길, 그 나무들, 터널처럼 어우러진 그 키 큰 나무들이었다. 초록 초록한 키 큰 플라타너스 터널을 통과하여 집에 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밝아졌다. 그날 하루 약국에서의 일들은 다 잊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대전 톨게이트로 다른 지역을 다녀올 때도 이 길로 돌아왔다. 다리 건너 우회전, 나무 터널 같은 이 길에 이르면 집에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고향이라지만 낯선 이 도시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약국을 옮기고 여유가 생기면서 수영을 시작했다. 이른 새벽 이 길 따라 수영을 다녔다. 네비가 알려주는 길은 달랐지만 나도 모르게 늘 이 길로 향하곤 했다. 대전에 내려온 첫 해, 힘겹게 출퇴근하던 그땐 플라타너스만 보였는데 계절 따라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봄에는 목련과 벚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엔 은행과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새벽 여섯 시, 해가 뜨는 시각에 따라 날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나날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지금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지만) 새벽 수영이라는 게 5분만, 1분만 더 자고 싶은 몸을 겨우 끌고 나가는 것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새벽 수영을 한지도 이제 4년이 다 돼 간다. 눈을 뜰 땐 갈까 말까 지금도 갈등을 하지만 막상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상쾌하다.
70여 일 만에 수영장을 가는 오늘. 눈을 떴는데 사방이 밝아지고 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시계를 보니 5시 32분, 부랴부랴 수영복을 챙겨서 나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 예리하게 빛나는 새벽달을 보며 수영을 갔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초여름 풍경에 선뜻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의 봄, 목련의 우아함에 반하고 휘날리는 벚꽃잎에 취했어야 할 시간들이, 한 계절이 뭉텅이로 잘라져 나간 느낌이다.
예전과 다르게 입구에서 간격을 두고 줄을 서고 체온을 재고 들어왔는데 막상 수영장에 들어서니 모든 게 그대로다. 익숙한 자리에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트루먼쇼의 잘 짜인 각본처럼 70일의 공백이 실감 나지 않았다. 수년 동안 이른 아침을 함께 보낸 사람들, 사적으로 교류가 많지 않으나 모종의 동지애가 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된다. 레인마다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나무들 같았다.
아직은 여리여리한 플라타너스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뭉텅이로 잘려나간 석 달 동안 오로지 집과 약국만 오갔다. 약국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은 아직까지 긴장되고 돌아올 땐 몹시 피곤하다. 오래간만에 비중 있는 역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의 위로는 유효하다. 산들산들 일렁이듯 춤추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렇게 너는 나를, 그리고 나는 나를 응원한다. (2020년 5월 7일)
새벽에 일찍 깨어 페이스북을 뒤져보다가 일 년 전쯤의 일기를 발견했다. 약국 시작하자마자 코로나에, 공적 마스크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집합 금지로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가 70일 만에 개장하던 날의 기쁨. 아마도 이 날엔 이렇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계절이 뭉텅이로 잘라져 나간 느낌'이 들었으리라. 한 계절이 아니라 일 년 넘게 수영을 쉬었더니 이제는 새벽 수영을 다니던 일들이 아득하다.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다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든다.
집단 면역에 도달하여 일상을 회복한다고 해도 코로나와 함께한 이 시간들을 이제는 뭉텅이로 도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일 년이 지나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 되돌아볼 땐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힘든 일이 많았고 그래도 꿋꿋이 잘 버티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이른 아침에 나와봤다. 천변 따라 짙푸른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