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감정 속에 피어나는 첫사랑 생각

뜬금없는 생각

by 에이프릴

반복되는 일상과 무거운 감정들로 머릿속이 뒤엉키다 보면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라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마치 뇌에서 '잠시 쉬어도 좋겠다'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대표적인 사인의 예로는 '첫사랑(또는 옛사랑)'이 되겠다.

(마흔이 넘고, 쉰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가끔은 생각이 나겠지 한다-나이가 무슨 소용일까, 첫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그렇지 않나?)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에게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부여할 수 있는 시절은 '정말 열심히 좋아하기만 해도 되었던 순수했던 그 시절'이라고 하겠다.

(너무 상반되지만 공부와 놀기가 전부였던 시절이라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좋아할 수 있었던 시절일 "뿐"이라고 해둔다. 그리고 세상을 어느 정도 알고, 더 다양한 감정으로 '폭넓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시절에 만난 지금의 그대가 진정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해본다-지금 남편의 눈치를 보고 있나요?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이십 대일 적에 뜬금없이 첫사랑 생각이 나는 날에는

내가 그때 그 사람과 잘 되었으면 어땠을까를 하루종일-밥 먹고, 양치하고, 화장실에서까지-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그러다 휴일이 되어 그를 아는 친구라도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 목이 쉬도록 떠들어 대곤 했다.(감정이입의 최고 시절이다.)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된 지금은 내가 지금의 사람이 아닌 첫사랑과 다시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한숨부터 쉬고) 사랑하는 열정은 둘째 치고, 그사이 변했을-어쩌면 몰랐던 둘의 습성을-다시 처음부터 알아가고, 맞춰가고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상상만으로도 지친다.


사실 지금의 짝꿍과 함께 한 시간이 제법 길어도 서로에게 완벽히 학습되지 않은 상황인데 새로운 대상으로 변경해서 연구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평생을 알아도 완벽한 학습은 어려울 것 같지만-이제 조금 익숙해진 모습에 감사하며 살고 있으니-다시 어려운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지금의 현실이 새로운 대상으로 다시 연구해야 하는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현실에 만족해서인지, 반복됨이 싫은 것인지, 아니면 첫사랑보다 지금의 짝꿍이 더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금세 잊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의 내 옆사람이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매력까지 넘치는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려니 하련다.


아직은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저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지, 현실이라면 저런 선택은 안 하지' 하는 마흔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삶의 작은 원동력이 되는 것도 재밌다.


나이가 들어도 감성만은 잃지 말아야 할 텐데-

흰머리의 할머니가 되어도 첫사랑을 기억하는 감성을 머금은 채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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