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소나무가 되고 싶다
"띳띠리리링~띠~리링~"
세상 고요한 일요일 새벽 네 시, 머리맡에 핸드폰이 천둥소리로 울린다.
"네, OOO 경비님 무슨 일이죠?"
"소장님~! 화재 경보 울리고 난리 났어요!"
"엥~~~에~엥~~~" 싸이렌 소리와 뒤섞인 경비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치 서울 상공의 공습경보 같다.
헉~ 이건 실전이다. 나는 기동타격대보다 더 빨리, 허겁지겁 우왕좌왕, 그날따라 잘 들어가지 않는 한쪽 신발 뒤꿈치를 꺾어 신은 채 현관문을 뛰쳐나간다.
정년퇴직과 동시에 새로운 직장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째, 신입 어리버리 물류창고 관리소장의 산전수전은 바야흐로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후로도 화재경보기는 심심하면 저 혼자 공습경보를 울렸다.
고3 때까지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잘 몰랐다.
대학도 성적에 맞춰 갔고 그것도 취업 잘 된다는 말에 그냥 공대에 갔다.
전기공학…. 나에게는 온통 수학으로 뒤덮인 처절한 암기과목이었다.
전공은 최소한의 필수과목만 이수했고, 그것도 시험장에 몇 시간 일찍 가서 책상 위에 쓰고, 팔뚝에 쓰고, 구석진 자리의 벽에도 쓰고…. 그런 그것이 시험에 나오면 쾌재를 불렀고, 안 나오면 팔뚝의 볼펜을 비누칠로 지우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다. 나의 대학 생활은 한마디로 비리와 권모술수로 이어진,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닌 "들판 졸업장 구하기"였다.
그런 전기공학 덕에 군대도 비교적 편한 기술병 보직을 받았고, 졸업 후, 돈 많이 주는 아주 큰 회사에도 들어갔다. 전기공학 덕분에 입사하였음에도 겨우 10년 정도만 전기분야 일을 하다가, 그 후, 전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화학제품 영업부서로 옮겨서 나머지 25년을 보냈다. 안 그래도 나에게 늘 "여. 사. 친" 같았던 전기공학은 이제 내 기억의 저편 낭떠러지로 사라져 버렸고, 나의 뇌 구조도 문과생으로 바뀌어 갔다.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60이 넘은 남자의 일자리란 주로 저임금 허드렛일에다 정규직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많은 퇴직자가 "비자발적 수도승"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달았다.
전전긍긍하던 차에 우연히 전기기사가 취업이 잘 된다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던 나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어느 왕조의 유물 같은 "전기"라는 것을 더듬거려, 천신만고 4전 5기의 신화를 쓴 끝에 전체 수석으로 전기기사를 땄다.(거꾸로 수석임, 60점 커트라인에 딱 60점), 그 전기기사 덕분에 회사 후배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지인들 인맥 동원하지 않고, 자력으로 당당하게 좋은 조건의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바로 그 "여. 사. 친"이 속 좋게도 나를 다시 만나 주었고, 게다가 큰 은인까지 되어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전기공학"은 나에게 "굽은 소나무"였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는 속담 속의 그 소나무.
그 나무는 내가 알아주지도 않았고 마음을 주지도 않았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생애에는 또 어디에선가 나를 바라봐 주고 지켜주는 "굽은 소나무"가 있을 것이다. 내가 고마움을 모르고 무심히 또는 무시하고 살아온 것들 중에 분명히 "굽은 소나무"가 있을 것이다.
다 지나온 뒤에 미안해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무심히 당연하게 여기며 존재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던 내 주위의 감사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늘 말없이 나를 보아주고 지켜주는 "나의 소나무"가 있듯이, 나도 끝까지 말없이 지켜주는 "누군가의 소나무"가 되고 싶다.
- 들판@양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