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가라앉히는 '대형 파쇄기 ASMR'
폭발시키지 못하는 분노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팽창된 분노를 풍선 바람 빼듯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온라인 어딘가에 혼자 주절 대는 것 정도.
'다 부숴버릴테다!' 때때로 끓어 오르는 욕망. 소셜미디어 시대엔 그것을 현실화한 콘텐츠가 존재한다. 아무리 단단한 물건이라도 조각조각 내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파쇄기.
틱톡 계정 'Master Shredder'(https://vt.tiktok.com/RwGoej/)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잘게 부숴버리는 'Shredder'(파쇄기)가 등장한다. 공장에나 머물러 있었을 놈이 훌륭한 콘텐츠로 변신한 셈이다. 파쇄기는 자기 몸짓 하나만으로 크리에이터의 면모를 과시한다.
엇갈린 두개의 원통형 무딘 톱날. 회전속도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무엇이든 잘근잘근 씹어댈 '악마의 이빨'. 추락한 물건들은 수초의 몸부림 끝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시각 뿐 아니라 훌륭한 ASMR 콘텐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다소 어려운 설명의 ASMR. 그냥 모든 소리가 누군가에겐 콘텐츠가 될 수 있음 아닐까.
금속, 목재, 플라스틱 등 물건의 소재에 따라 파쇄기가 내는 소리는 다르다. 저마다의 '신곡'이 된다. 죽음의 소리, 최초의 소리. 때로는 배경음악과도 손색없이 화음도 낸다. 주목할 것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찌르는 '바늘의 소리'가 아니다.
팽팽한 풍선의 매듭을 풀어 천천히 바람을 빼는 소리에 더 흡사하다. 분명 인간을 위해 희생했을 물건들의 최후. 파쇄기에 부숴지는 순간이 자극하는 시각과 청각은 팜므파탈의 유혹이나 다름없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여행용 트렁크, 금속 대접, 철사, 페트병. 파쇄기는 편식도 없고 식욕은 무한대다. 돈을 내고 폐차장의 차를 마음대로 때려 부숴도 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화제를 모았던 기억이 있다.
거대한 파쇄기 역시 직접 지켜보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극대화된 분노의 대상이 아닐까.
어떤 물건이든 파쇄기를 통과하면 실체를 잃고 작은 조각으로 떨어진다. 묘하게도 이 과정을 지켜보면 분노 역시 해체되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겐 힘든 노동의 과정일 파쇄기 작업이 소셜미디어를 만나 누군가에겐 위로를 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