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쓰는 것
괜찮다고 생각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쉽지 않지만 곧 새로운 시작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나보다. 어제 아침 하우스메이트 앞에서 울어버렸다. 왜 우냐는 그의 질문에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는 말없이 우는 나를 보다가, 너 제대로 아직 한 게 없잖아. 이제 시작이잖아. 해보지도 않았잖아. 다 적당히 했잖아. 라고 얘기한다.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고, 그래서 적당히 했다.
다 울고 나서 추스리고,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지도앱을 켜 목적지를 치고 따라가려다가 멀리 보이는 남산을 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저 남산을 보고 따라가야지.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천천히 걸었다. 거리도 구경하고, 지나가거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용산 도서관과 남산 도서관을 지나면서 이따가 내려오면서 가봐야지, 한다. 오르막을 천천히 오른다.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이 꽤 많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가끔 마스크를 내려 시원한 공기를 마신다. 남산을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남산타워에 도착해 아래로 보이는 서울을 구경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10분 짜리 긍정 확언을 들었다. 문득 생각했다. 눈물이 났던 건 불안해서라고. 계속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시작도 못할까봐,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봐 불안해서라고. 그리고 시간을 두고 한 발 더 들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찾았다. 명확한 방향이 없다는 것. 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만 찾았다. 그걸 하면 뭐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면 될 거라는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큰 틀조차도 잡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하는 건 그 범위를 좁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시도하는 거다. 방향을 확고하게 잡아두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불안할 일이 없다. 시작 버튼을 외부에서 찾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았어야 하는 거다. 가벼운 마음으로 남산을 내려왔고, 오늘 아침 시간을 들여 방향을 설정했다. 10년 뒤 내가 원하는 내 모습과 그걸 이루기 위해서 3년, 5년, 7년, 8년 뒤 내가 되어있어야 하는 모습,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고 계획했다. 가만히 정리한 노트를 바라본다. 길이 명확히 보이니 불안감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