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홍은택 옮김. 까치. 2021.
연두 서평.
1.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보이는 시간의 양에 근거를 둔다. 예를 들면 사랑에 대해서도 사랑하는 정도와 시간의 양은 비례한다고 믿는다. 아마도 내가 말보다는 몸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바로 몸이 겪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천천히 가는 방법이다. 그 길에 있는 것들을 휙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볼 수 있고 사소하고 다양한 것들과 직접 만나고 느낄 수 있다. 내게는 시간의 양과 사랑이 비례하므로, 가장 오래 걸리는 걷는 것은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해서 지구를 걷고, 걸으면 걸을수록 지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꽤 먼 길이고, 2킬로미터는 상당한 길이며, 10킬로미터는 엄청난 길이며, 50킬로미터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얼마 안 되는 동료 등산가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지구 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만의 작은 비밀이다. -p113
북아메리카 대륙인 미국과 캐나다에는 위아래로 쭉 뻗은 큰 산맥이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있다. 동쪽에 있는 것은 애팔래치아산맥이고 서쪽에 있는 것은 로키산맥이다. 이 책은 박학다식하며 유머감까지 겸비한 작가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산맥을 종주해 보겠다는 각오로 그 숲을 걸은 이야기이다. 그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친구 카츠와 “그냥 걷고 또 걸었던 너무나 행복한 “ 기행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p187
2.
내게도 애팔래치아산맥에 대한 추억이 있다. 애팔래치아산맥 북쪽 끄트머리쯤에 캐나다 퀘벡주의 가스페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은 대서양에 인접해 있는 절벽의 도시로 우리 가족은 텐트 안에서 바로 대서양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캠핑장을 예약해 두었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했던 그날 하필 바람경보가 발령되었다. 저녁 무렵 겨우 캠핑장에 도착해 주차하려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인이 차를 흔드는 것처럼 바람에 차가 무섭게 흔들렸다. 차 문이 바람에 밀려 열리지도 않았다. 바람과 싸우다 겨우 열고 내렸지만 닫을 수도 없었다. 무서운 바람이었다. 날아갈 것 같은 조그만 나의 아이들을 품에 감싸고 한걸음 한걸음 바람에 맞서며 도착한 관리사무소에선 오늘은 이곳에 텐트를 치는 건 위험하니까 근처 모텔에서 묵는 걸 권한다고 했다. 전망은 최고지만 위험한 캠핑을 포기하고 서둘러 모텔을 얻었다. 아쉬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다 어느새 잠이 들고 또 어느새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갔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갈만한 그 작은 화장실 벽에는 사방 30cm 정도의 네모난 창이 있고 그 안에 노란 보름달이 떡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의 빛과 색과 쟁반같이 둥근 형태가 내게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충만함, 그것은 은밀한 선물이었다.
3.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서울시의 15배 넓이의 화산 고원이다.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간헐천이나 온천의 뜨거운 증기로 인해 많은 트레일이 수증기로 뿌예 앞이 잘 안 보이고 그 수증기 사이를 조심스레 걷다 보면 어느새 바로 앞이나 옆에 팔팔 끓는 커다란 물 웅덩이가 나타나곤 한다. ‘사실 지구는 뜨겁다’는 진실을 대면하면서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이다. 화산지대의 간헐천은 뜨거운 물이 수직으로 치솟는 모습이 장관이지만 워낙 불규칙적인 시간 간격을 갖기 때문에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옐로스톤국립공원엔 특별하게도 정확히 90분마다 규칙적으로 분출이 시작되어 물줄기가 50미터 상공으로 튀어 오르는 간헐천이 있다. ‘올드 페이스풀‘ (old faithful), 이 이름은 한국어로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분출되는 시간이 규칙적이어서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이 여행 직전에 친한 친구와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이 간헐천의 이름에서 어떤 통찰을 얻게 되었다. 예측이 가능하다면 신뢰가 생긴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상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옐로스톤국립공원은 대부분이 숲이어서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버펄로인데, 크기가 2-3.5미터이고 무게가 600-900킬로 정도 되는 짙은 갈색의 덩치가 아주 크고 이마에 부메랑처럼 휘어진 뿔을 두 개 달고 있는 초식동물이다. 그곳은 면적이 워낙 넓어 한 트레일을 걷고 다른 트레일로 이동하려면 공원 내에서도 차를 이용해야 한다. 다른 트레일로 가기 위해 운전하며 도로 모퉁이를 돌았는데 덩치 큰 버팔로 한 마리가 바로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혼자서, 아주 느리게, 왕복 2차선의 노란색 중앙차선 정 가운데로, 커다란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일자로 모델 워킹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뒤따랐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그 버팔로가 드디어 천천히 가장자리로 이동했고 우리 차는 버팔로가 놀라지 않도록 저속으로 버팔로를 추월했다. 그때 두 딸 들이 소리쳤다. “ 와! 버팔로 머리에 꽃 꽂았어! 너무 예뻐! ” 돌아보니 줄기가 기다란 하얀 들꽃 한송이를 귀에 단정히 꽂고 다시 노란 중앙차선으로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내가 본 버팔로의 눈은 몽상가의 눈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는 또는 그녀는 분명 꿈을 꾸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름다웠다.
4.
내가 캐나다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은 로키 산맥이다. 유명한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빙하 근처에 유명하지 않은 Parker’s ridge라는 트레일이 있는데 주차장에서 2시간 정도를 올라가면 봉우리에 도착한다. 한 여름에도 바람이 무섭게 불어 방풍잠바를 꼭꼭 여미어야 되는 곳이다. 그곳에 오르면 로키산맥의 장대함을 느낄 수 있다. 저 넘어 봉우리와 그 넘어 또 그 넘어 봉우리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빙하 호수들이 한눈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장쾌하다. 그리고 그 높은 곳의 바닥엔 조개 화석들이 가득하다. 아주 아주 옛날엔 이 높은 곳이 바닷속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 살다 죽는 이 지구의 오래된 시간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이 어떤 별에서 살다가 가는 건지 알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해에 70대의 부모님과 만만치 않은 이 트래킹을 하게 되었는데, 힘든 산행후 봉우리에 도착하자 아빠는 그 넓은 곳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마구 뛰어다니셨다.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내가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해방과 환희였다. 엄마는 우셨다. 이런 모습은 꿈에서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라고, 고맙다고.
로키산맥을 여행하다 보면 그곳의 주인이 동물들이라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 세계의 질서를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그곳에선 코요테도 사슴도 들소도 무스도 비버도 흔하지만 흑곰과 그리즐리곰도 살고 있다. 다섯 개의 호수를 품고 있는 Valley of the five lakes 트레일을 걷다 2번째 호수를 지날 때쯤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엄마! 곰!” 아기흑곰 두 마리가 호수옆에서 물을 먹고 언덕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또 우리들과도 몇 미터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곰은 아기곰만 다니는 법이 없는데, 게다가 엄마곰은 모성애가 대단해서 새끼와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사람을 해치기가 쉽다던데, 나는 얼른 내 딸들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곰이 언덕 위에 나타났다. 사람을 보지 않는 척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 한 분이 그 호수 근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짓을 해서 모았다. 그분이 맨 앞에 서고 15여 명 남짓한 사람들은 그 뒤에 길게 한 줄로 섰다. 그리고 그분이 알려준 대로 모두 동시에 손뼉을 맞춰 치며 걸었다. 뛰어서도 안되고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한마음으로 짝! 짝! 짝! 손뼉 치며. 엄마곰이 우리가 자기 새끼를 해칠까 오해해서 공격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 줄로 한참을 짝짝짝 박수소리에 맞춰 걸어 나왔다.
5.
캐나다의 서쪽에 밴쿠버 섬이 있다. 남한의 1/3 크기인 이 섬은 다우림(rainforest) 지역이다.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낙엽의 부식도 빠르고 그로 인해 영양가 높은 흙이 만들어져서 나무가 쑥쑥 자라고 숲 전체가 커다란 고사리같이 생긴 양치잎들과 이끼로 가득 덮여 있다. 어마어마한 면적에 침엽나무 숲의 우듬지들이 끝없이 하늘을 향해 자라 해를 가리고 있어, 어슷어슷 박명의 빛으로 채워진 빽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데, 그곳을 걷다 보면 쓰러진 도목들에서 여러 생명이 살아나고 있다. ‘후안 데 푸카 트레일‘도 그런 숲으로 시작한다. 1시간가량 걸어 들어가는, 하늘이 보일락 말락 한 빽빽한 원시림에 양치잎들과 이끼가 가득히 뒤덮인 숲이기 때문에 걷다가 작은 소리라도 나면 흠칫 놀라게 된다. 뱀도 코요테도 곰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한참을 걸어 내려오면 어느 순간 갑자기 짙푸른 바다와 그 너머 기울임도 흔들림도 없는 긴 가로선, 그래서 내게 고요를 느끼게 해 준 태평양의 수평선을 만난다. 나는 밴쿠버 섬을 사랑한다. 이곳은 매번 나에게 지구의 ‘태곳적 모습‘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6.
밴쿠버섬, Sooke 마을, 이른 아침이었다. 안개가 옅고 넓게 깔려 있었고 마을과 바다 경계에 기둥을 세워 띄워서 깔아 놓은 데크를 따라 산책하다 그 끝에 섰다. 눈앞에 안개와 짙푸른 바다와 저 너머 초록 숲. 적요가 느껴졌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까? 너무 고요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깊었기 때문일까? 그때 갑자기 그 시간의 그 우주가 한순간에 온전히 인식되었다. 나와 우주는 같은 시원이었고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아, 우주는 위대하고 아름답고 아주 아주 오래 살아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잘하려고 완벽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우주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우주는 너무너무 거대하고 나는 아주 아주 작았다. 나의 실수는 우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괜찮다고. 나는 울었다. 그것은 모성의 사랑이었다. 내가 어떤 존재라도 괜찮은, 사랑.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것 같은 편안함이 내 몸에 가득 채워졌다. 내 존재의 시원성을 자연으로부터 몸으로 인식한 ‘푸근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이상한"(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차용),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7.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걸었던 여러 숲을 추억하게 되었다. 나는 그 숲들을 항상 나의 남편, 그리고 두 딸들과 동행했다. 내가 걸은 모든 트레일은 가족과의 사랑이었고 지구에 대한 감탄이었으며 우주에 대한 경외였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낮은 수준의 환희“로 나에게 매일매일 상기되었다.
글을 쓰기 어려운 날들이었다. 뉴스에 온 신경이 쏠려 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났다. 내가 많은 곳을 걸었던 것도, 느리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그리고 매일 수영을 하는 것도 모두 긴 호흡을 위해서이다. 이런 폭력적인 세상을 살기 위해 나는 항상 긴 호흡을 연습해 왔다. 숨을 길게 내쉬고 또 깊이 들이마시면서 곧게 걷자. 그렇게 살자. 외롭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다시, 긴 호흡을 하며 꼿꼿하게 또박또박 걷자.
*이 글은 작년 12월 3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