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연두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 출판. 2022.

연두 서평.


불변의 진실은 이렇다.

’혼돈만이 세상의 진실이다.’

’서열, 경계, 분류, 의미, 신, 우리가 질서라 믿고 있는 이 모든것은 편리함과 편안함을 위해 인간이 만든 상상물이다.’

‘당연히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 룰루 밀러 만이 아니라 내가 읽은 많은 책들은 이런 내용들로 나를 도끼질 해 왔다. 아무리 흔들리며 생각해도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나는 그것들을 인식하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야하는 세상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진실과는 딴판이었다. 내가 인식하는 진실과 욕망하는 현실 사이에서 불안하며 외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혼돈속에서 허구의 상상물을 골라 내는 것, 고작 그것 뿐이었지만 매번 헷갈리고 버겁고 때론 슬펐다. 그것은 내겐 틀림없이 생존이 걸린 문제였지만, 나는 억압과 통제력의 경계, 또 우울과 외로움의 경계에 있었고 늘 아슬아슬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세상에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는게 진실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것은 혼돈의 세상안에서의 혼란이다.


우리의 뇌는 현재를 인식하지 않고 매 순간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뇌에 현재가 없는 것도 무능력한 뇌로는 인식되지 않는 세상의 혼돈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이야기는 그녀의 혼돈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시작되면서 존재 전반에 대한 혼란과 교차되었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그 느낌일 것이다.

-p207


그 혼돈에서 어떻게 의지를 갖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답을 찾으려고 마흔에 스탠포드대 초대 학장이 되었으며 어류학의 대가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과 기록들을 분석해간다.


혼돈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긍정적 착각’, 즉 자기 기만을 위한 논리를 만든다. 데이비드와 그의 스승 루이 아가시 처럼 분류하고 서열화해서 질서를 만들고 거기에 신의 이름을 건다. 신의 뜻이 되는 순간 의심과 오류는 있을 수 없다. 그들 삶의 비법은 혼돈이 공격해올 때마다 강한 힘으로 반격해서 더 힘 센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민들레는 다 뽑아버리고 장미만, 때가 달라지면 백합만 남기는 질서를 신의 이름으로 만드는 ‘끈질긴 투지’, 그것이 그들 삶의 비법이다.


평생을 신의 계시를 부여하려 ‘물고기’를 분류, 서열화 했지만 결국 어류라는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 그럼에도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다. 죽을때까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충분히 이해시키고 경고했음에도 그들은 질서를 위해 진실을 편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p227


혼돈은 인간에게 불안을 야기한다. 그래서 인간은 보이는 것을 믿는 직관에 의지하고 가진 정보들을 짜집기해서 질서를 만든다. 그것의 선물은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이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약점때문에 반드시 의심하고 질문하고 ‘오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 자정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왜? 진실이 아닌 거짓과 오류를 믿으면 결국 인류가 자멸할 거라는건 뻔한 일이니까.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로부터 찾지 못한 답을 사회의 ”부적합자”인 애나에게서 듣는다. 우리는 지구와 우주에는 중요하지 않지만 접촉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는 것. 접촉하며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혼돈’이라도 또 ’우리가 중요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어떻게?


물고기를 포기하면 된다. 규정, 이름, 경계를 포기하면 살 수 있다. 그러면 자유를 얻는다. 우주를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비책이 되기가 어렵다. 적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데이비드와 아가시가 사다리 만드는 작업을 하다하다 인간을 서열화하는 우생학을 맹신하게 된 것은 비난받을 일이라고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엔 여전히 사다리가, 서열이, 차별이 존재한다. 그들이 제대로 벌 받지 않는, 따라서 변하지 않는, 그래서 여전히 여리고 약한 생명들이 죽는 세상에 나는 가슴이 덜덜 떨린다.


불안이 두려워 자유와 우주를 얻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진실은 당장은 힘이 없다.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만큼 “장엄한“ 것이다.


여전히 사다리는 살아 있고 진실을 좋아하면 루저이며 아웃사이더가 되기 쉬운 세상에서 나의 딸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용기내서 너답게 살면 된다고, 별 거 없으니까 우리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잘 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얼마나 자유롭냐고 말해주면 되는 걸까? 자본주의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의 욕망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참 어렵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의심받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계는 허구이며 오류이므로 없어져야 한다. 자연엔 경계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룰루 밀러처럼 나도 혼돈인 세상에서 애쓰다가 다른 삶들을 기웃거렸었다. 그러다 내가 찾은 방법은 나답게 루틴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이 살아 숨쉬는 루틴은 오류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게 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집이다. 그 집에서 삶을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유와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우주에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니까. 나의 질서를 만들어 무해하면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오류는 오케이! 수정은 언제나 웰컴!


이 책을 읽은 후 며칠 생각이 많았다.

물에 살면 모조리 물고기라고 우기는 세상에서 진실일지라도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내 딸들이 우주의 진실과 우주의 시간을 상기하며 살기를 바란다. 우주에서의 100년 인생, 우주에서의 인류사, 그렇게 우주와 자연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역사보다 보편적 진실에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우주와 자연이 엄마인 나보다 더 커다란 모성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딸들,

질서를 동경하지 말아라! 자유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인간의 자유는 혼돈의 우주가 품는다!


음. .

우주는 혼돈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 쉬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는 그런것이다.

발란스, 시시때때로 상기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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