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by 연두님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돌베개. 2017.

연두 서평.



1.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 Wordsworth는 우리 삶의‘시간의 점‘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속에 파고들어 힘을 주는 장면’이며, 우리는 삶이 힘들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아 회복한다고 장시 <서곡>에 쓰고 있다.


내 지나온 삶에도 ‘시간의 점‘들이 여러 개 있다. 그 동그란 점을 응시하면 마법처럼 그 시절이 펼쳐진다. 따뜻하기도 찬란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겁게 가라앉기도 한다. ‘신영복’은 내게 특별한 ’ 시간의 점‘이다.


1991년 가을, 20살의 나는 타의에 의해 아무 준비도 없이 급히 미국으로 쫓겨났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조차 창피하고 버거워 짐가방 하나 달랑 들고 비행길에 올랐는데, 그 가방 속 옷가지 틈에는 동기와 선배, 후배들에게서 받은 편지들과 내가 챙겨 넣은 단 한 권의 책인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들어 있었다. 곁에 모시고 싶은 어른이셨다. 외로워서 휘청일 때면 나침반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줄 책이라고 믿었다. 사실 나는 그때 날개가 완전히 꺾였었다. 그 유배의 길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동행은 그럼에도 아직 잘 살아보고 싶다는 아주 비밀스러운 소망이었으리라.


34년이 지났다. 선생님의 <담론>을 읽었다. 이제는 이 책에 나를 비추어 볼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무엇을 추구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 알아야 했다. 지금을 이해하고 싶었다.


2.


27살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수로 감옥에서 살다 20년 만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그는 그 후 성공회대학교에서 인문학강의를 한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강의이며 그가 평생에 걸쳐 공부하고 실천하고 창조한, 사람과 삶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이다. 그리고 이 담론의 중심엔 ’ 관계‘가 있다. 관계를 세계의 본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세상에 관계없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137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주의 어디쯤에서 빅뱅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이 폭발한 것이 빅뱅입니다. 지금도 우주는 확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137억 년 전에는 나와 여러분은 물론 나무, 별, 지구, 은하수가 전부 한 개의 점이었습니다. -p304



겸손한 그의 글을 천천히 읽으면 그가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크게 회의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 비인간적 구조를 뛰어넘으려고 고뇌했다. 그래서 그가 찾은 방법이 ‘존재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이다. 이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을 중심에 두고 나의 존재를 타인의 존재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해 타인을 지배, 흡수하려는 근대의 ’ 존재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개인적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절반은 동양의 고전들 속에서 ‘관계론’적 사상을 들여다보며 세상 속에서 진실을 읽는 눈을 키우고, 나머지 절반은 감옥에서 만난 이 시대 변방의 사람들과의 삶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자기 변화의 씨앗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에게 독서는 한 발걸음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목발이 되었고, 그렇게 그는 두 발로 걸었다.


한 발걸음은 이런 것이다.


그는 ’인지 ‘가 진정한 ‘지‘라고 생각했고(논어), 직접 만난다면 부끄러운 행동을 하기 어렵다고 여겼고(맹자), 모든 것은 그 존재보다 관계 안에서 처한 위치를 더 중요히 봤으며(주역), 보이는 작은 세계와 보이지 않는 큰 세계를 통합적으로 인식하려 했다(노자).


노동을 생명 그 자체로 보고 그것이 인간화, 예술화되길 희망했으며(장자), 모든 공부는 ’ 탈정‘이어야 한다고 여겼다(장자).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고자 했으며(묵자), 어리석고 졸렬한, 실패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이 결국 언젠가 꽃을 피운다고 믿었다(한비야).


그리고 목발은, 감옥에서 만난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의 과거의 삶이었다. 그것을 열심히 듣고 자신을 성찰했다. 한 발과 목발, 그렇게 두 발로 뚜벅뚜벅 걸었다. 두 발걸음은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두 발걸음’을 얻기 위한 꾸준한 노력은 그 자체로 충분히 좋다고 하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삶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변화를 결심한다. 그에게 그것은 항상 새로운 시작이 되었고 창조하는 삶으로 이어졌다. 톨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공부’이다. 그리고 그의 ‘공부’는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기가 없는 무기수의 경우는 그 하루하루가 무언가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깨달음으로 채워지고 자기 자신이 변화해 가야 그 긴 세월을 견딥니다. -p249



무기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지프스도 그렇다. 또 나도 그렇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렇다. 우리의 인식은 진실에 비하면 아주 부분적인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찾으러 변화하고 창조한다. 이것이 자기 생성의 과정이고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은 궁극적으로는 씨를 만드는 과정이다.



꽃은 씨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회 변화? 저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변화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 그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인간적이고 아름답고 보람 있으면 그것으로 훌륭한 사회입니다. - 어느 인터뷰에서



책 <담론>은 25개의 강의 각각이 깊은 내용과 거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공부‘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공부’의 방법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가두고 있는 좁고 알량한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 공부’의 목적이다. 변화와 창조를 위한 과정이 ’ 공부‘이다.


그는 이렇게 강물이 되어 모든 것을 아울렀다. ‘함께’ 아래로 아래로 흘러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다 품는 바다가 되었다.


나는 그가 세상에서 쓴 모든 글은 ’사랑‘이었고, 그래서 ‘겸손’했다고 생각한다.


3.


이 책은 인간과 삶에 관한 여러 개의 담론 중의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강물에 나의 삶이 자꾸 비추어졌다.


바다가 된 신영복 님을 닮지는 못했지만, 어떤 것들은 ’ 머리에서 가슴까지‘ 여행했고 또 어떤 것들은 ’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진실을 찾으려 항상 애썼고, 그 진실을 예술적 방법으로 창조하고 소통하고 싶어 연극을 했다. 내게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의 진실을 깨닫는 것과 닿아 있었다. 그렇게 예술을 사랑했다.


타인의 삶을 존중했다. 그들의 눈을 보며 삶의 얘기를 들으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과정에 가치를 두었다. 살아있는 것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그것은 아름다웠다. 매 순간 깨어있고 싶었다. 그러면 기뻤다.


나를 가두고 있는 것들에 저항했다.


하지만,

난 바다가 되지 못했다.


<담론>을 읽고 알았다.

나는 타인을 존중했지만 그 차이를 목발로 삼고 걷지 않았다. 선생님이 가장 우려하신 ‘존재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다. 나는 오히려 개성과 고유성을 추구했고 나를 관계의 중심에 두었다. 내가 타인의 존재보다 멋지길 바랐다. 완벽해져야 했다. 나는 개인일 뿐이었다. 결국 자아가 커질 대로 커져버렸다.


그렇게, 완벽한 나를 추구했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을 외면했다.


나무 한그루만 볼 줄 알고 나는 멋진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숲의 나무가 되면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무는 큰 나무, 작은 나무, 결함 많은 나무, 가지 부러진 나무도 있지만 숲은 모든 결함까지도 다 품어서 숲을 만들어 냅니다. 숲은 나무의 완성입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이 개인이 아닌 숲의 사람이 되는 방법입니다. 숲을 이루고 나면 작은 나무나 큰 나무나 흠이 되지 않습니다. -대학 강의 중



이것을 알지 못해 나는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4.


2016년 신영복 선생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캐나다에서 뉴스로 읽었다. 나는 아직도 반쪽짜리 어른인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남들이 보면 뵌 적도 없으면서 별스럽다 여길까 봐 몰래 애도하며 울었다.


유튜브로나마 선생님을 보며 ‘아, 바다를 닮았다는 건 저런 거구나...‘, 가슴이 뜨뜻해졌다.


지난 54년의 시간에는 여기저기 ‘시간의 점‘도 있고 ’ 우연의 점‘도 있지만 내겐 ‘책의 점‘들도 있다. 그 책의 점들은 변화의 가능성으로 숨 죽이고 있다가 나중에 시나브로 발현되었다. 그래서 그 모든 책의 점들을 이어 보면 지금의 내가 된다.


20살에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관계’의 뜻을 다시 꼭꼭 씹는다. 책의 점들은 선을 만들며 이어질 테니 웃자. 다툼 없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그런 물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한 발이 아닌 두 발로 걸어야 한다.


나도 바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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