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글. 어크로스. 2018.
연두 서평.
확실히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모든 곳에 퍼져있다. 모르면 더 불안하니까 나는 책에 기대 본다. 대부분의 책들은 인공지능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동시에 인간을 인공지능과 구분하고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와 달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로 어떻게 이 시대를 극복하자는 것인지는 읽히지 않았다. 나는 막연하게 지금의 자본주의 가치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치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아주 아주 아주 아주 힘들 거라고 본다. 시간도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 슬프게도.
구본권의 <로봇 시대, 인간의 길>은 10년 전에 쓰인 책이다. 인공지능이 10년간 얼마나 달라졌는데... 그러나 이 책은 인간적인 가치에 집중한 책이라서 현재에도 유용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가치의 쓸모를 말한다. 그가 진정한 전환을 꿈꾼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나는 이것이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나를 깊게 건드린 이 책의 특별한 부분만 말하려 한다.
구본권 작가는 세 가지를 중요하게 다룬다. 첫 번째는 ‘여가’의 중요성이고 두 번째는 ‘결핍’과 ‘고통’의 힘이며 세 번째는 기억과 지식을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하는 문제이다.
작가는 특히 인간의 어두운 ‘감정’에 주목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결핍’, ‘고통’, ‘외로움’, ‘불안’과 같은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 생존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과 ‘의지’를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본다. 이것이 앞으로도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 작가는 ‘여가’에서 인간의 특별한 가치를 찾았다.
여가, 즉 자유로운 시간은 노동시간에 딸려서 제공되는, 휴식을 위한 부수적 시간이 아니다. 여가는 개인별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대부분을 구성하는 ‘자유로운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여가는 노동시간에 하지 못했던 비일상적 활동을 하는 이례적 시간이 아니라 양적으로도 생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본적 시간이 된다. 여가를 보내는 데는 자율적인 시간 관리 능력이 요구된다. (...............)
마커스 라이클 교수가 밝혀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뇌에는 사고, 기억, 판단 등 인지활동을 할 때가 아니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을 때 비로소 활성화되는 일련의 부위가 있다는 연구다.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쉬는 동안 활성화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자아 성찰, 사회성과 감정, 창의성을 지원하는 두뇌의 부위라는 것이 잇단 연구로 밝혀지고 잇다. 멍하게 쉬어야 비로소 가장 사람다운 기능이 작동한다는 발견은 우리의 삶에서 휴식과 여가가 갖는 의미의 지대함을 알려준다. -p180
‘여가’는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인간이 지금껏 자유의 영역에 놓아두었던 ‘우연’, ‘실수’, 내가 사랑하는 ‘모호성’을 빼앗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간이 줄어들 테니 ‘여가’는 남겨지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여가’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인간다운 가치를 자유의 영역에서 확장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이런 희망을 품어 본다.
‘노동’으로 인간다워진다는 생각에서 ‘여가’로 인간다워진다는 생각으로의 전환, 이 같은 가치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경쟁을 통한 성장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과의 경쟁과 성장은 우리를 자괴감에 빠뜨릴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의 연령대별 사망원인 조사를 보면, 10대, 20대, 30대, 4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망자에게 물을 수는 없지만, 생존의 본능을 거스르는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것이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는 판단에서 한 결정이기에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 성장, 능력주의, 타인과의 비교, 이런 자본주의적인 가치는 우리를 살릴 수 없다. 이제와는 다른 가치와 다른 목표에 인류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며 사회를 확장시켜 왔다. 인공지능도 기억과 지식을 아웃소싱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조만간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개발되어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대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때 인간은 이런 강한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하며 통제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는 자문한다. 인간 지능은 강한 인공지능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판단과 결정을 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잘 못한다고 느껴왔고 그것이 위험 신호처럼 여겨졌다. 그런 때에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은 더욱 위험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빌어 더 생각해 보았다.
중요한 것을 정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통찰력’ 일 것이다. 이 통찰력은 우리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달된 ‘일반화’와 ‘추상화’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위에서 얘기한 ‘여가’는 ‘일반화’와 ‘추상화’가 일어나는 사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요즘 유행처럼 말하는 ‘지속 가능성’도 멀리 볼 줄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통찰력’은 바로 멀리 보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리가 바빠지면서, 주도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사유’를 위해, ‘일반화’와 ‘추상화’와 ‘통찰력’을 위해,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호기심과 관찰 그리고 사유로 이어지는 인간 고유의 정신적 상징체계를 가동하려면 일정한 지식이 필요하다. -p275
외부 기억을 더 유용하게 활용하려면 그 기억을 불러와 살아 있는 사고 작용으로 연결해 줄 생물학적 기억이 내 머릿속에 담겨 있어야 한다. -p308
모든 지식과 기억을 인공지능에게 아웃소싱하면 안 된다. 공부하고, 기억하고, 사유해야 한다. ‘결핍’을 느끼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 ‘결핍’을 느끼는 ‘감정’과 자발적인 ‘지적 체계’가 우리를 살릴 힘이 될 것이다.
구본권 작가가 말하는 이 모든 인간의 고유한 가치들은 사실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다. 자신의 내적 동기를 추동하여 자유로운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는 것,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다움을, 자유를, 삶의 주도권을, 주관을, 잃고 있었다. 다시 찾아야 한다. 가치를 전환한다면, 인간의 본질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인공지능과 지속가능하게 공생할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까지의 작가의 책과 나의 독후의 글은 기존의 가치로 알지 못할 미래를 얘기한 것이다. 사실 우리의 가치는 지금도 변하고 있다. 내가 익히 배운 가치와 윤리로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것에 비관적이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앞으로 달라진 우리를 분석해 내야 할 것이고 그 변화된 가치와 윤리에 맞춰 모든 것을 새롭게 논의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서평이 몹시 어려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