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by 연두님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김상훈 옮김. 엘리 출판사. 2016.

연두 서평.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은 2주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빙빙 돌던 질문이다. 농담에서도 서사를 찾게 되는 내 성향은 이번에도 영락없이 과학적 공상을 허구로만 보지 못했다.


이 과학 단편 소설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은 짧지만 아주 깊다. 외계의 다른 언어의 이야기는 다른 사고체계의 이야기였고, 다른 사고체계는 다른 시간 개념에 대한 이야기였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기억과 감정과 생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질문한다. 미래를 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고심 끝에 ‘선택’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 부르는데, 사실 자유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르므로 주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서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한정적이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로 이어 그은 인과관계로 세상에 서사를 부여하며 이해해 왔다. 시간도 이런 서사의 순서로부터 만들어진다. 이런 시간 개념은 자신을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켜 경험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테드 창이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외계인의 언어는 완전히 다른 인식방법이다. 외계인 헵타포드는 그들의 뛰어난 지각능력으로 한꺼번에 가능성 있는 모든 사건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세계의 미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정해진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처음과 끝이 있을 때 그 사건의 목적을 알면 가능해진다. 목적에 맞는 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드라마의 끝을 알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목적에 맞춰 해석되는 것과 같다. 헵타포드들은 이렇게 모든 것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고 그 미래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산다.


이 이야기는 테드 창의 상상이지만,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생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인류에게 아주 오래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렸다. 오이디푸스는 끔찍한 예언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는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 삶을 선택하고 살았지만 결국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눈을 찌른다. 자신의 삶의 주도권은 오이디푸스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눈을 멀게 하는 고통을 가져가면서까지 철저하게 보여준다. 그는 숙명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그 숙명을 대면하는 방식만큼은 그의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어떤 한계를 갖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미래가 정해져 있든 그렇지 않든 오이디푸스의 방식은 같았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할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어서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바로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 인간이 AI와 다르게 가지고 있는 것이 감정이다. 외계인 헵타포드와 다른 것도 감정을 느낀다는 것 아닐까?

나는 감정이 이 시대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단, 감정은 중요하고 진실한 것이지만 감정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것은 윤리적인 지점에 걸쳐 있어서 조심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아는 세계에서 산다면, 우리의 감정은 알고 있는 미래를 진실로 만드는 경험이 될 것이다. 또, 미래를 알 수 없는 세계라면, 감정은 우리의 자유와 의지와 선택에 충만해지는 몰입을 주면서 생에 대한 사랑이 될 것이다. 미래를 알든 모르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감정이며, 그 감정은 선택의 경험을 통해야지만 비로소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언어학자 루이즈는 외계인의 문자를 습득하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도 기억하며 살게 되었다. 그런 그녀는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한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p230



이것은 미래를 아는 자만의 질문이 아닐 것이다. 미래를 모르는 우리도 목적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와, 내 주변과, 지구와, 우주와 가장 조응하는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맨사 하비가 <궤도>에서 말했듯이 “우리 존재의 의미는 크지만 동시에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내 생의 목적지는 어디이고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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