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기고 엮음. 2019. 위즈덤하우스.
연두 서평.
1.
두 달 전, 어느 소모임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음, 나는 무엇을 아름답다 했었나?
20년 전, 어린 두 딸을 키우면서도 연극수업 일을 하느라 몹시 바쁘게 생활을 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쯤, 인간관계에 진저리가 쳐지는 일을 겪었다. 숨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할인에 혹해서 미리 예매해 놓은 실내악 연주회 티켓이 나를 괴롭혔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나는 결국 갔다. 두 딸을 양손에 꼭 잡고,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 내려, 호암아트홀까지의 언덕길을 걸어가며 오지 말걸 내내 후회했다.
8개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수백 명의 객석의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순간, 기침도 부스럭거림도 참아내며 정성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음악은 연주자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구나. 관객과 연주자는 합주를 하고 있었다. ’ 최선‘은 이런 것이리라. 내가 진저리 치던 것이 인간이었는데, 여기서는 음악만 살고 모든 것이 고요해지도록 한 명 한 명이 스스로를 통제하며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 그 모두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생각하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름다웠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그 수 백명의 마음을 ’ 영혼‘이라 불렀다. 어떤 때는 그것을 ‘의식‘이나 ’ 자아‘, 때론 ‘정체성’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빈센트 반 고흐는 그것을 ’ 신성’이라 믿었다고 생각했다.
2.
37살에 자살로 생을 다한 빈센트는 20대에 신학공부를 하고 잠시 전도사의 삶을 산다. 미술상 수습도, 교사도, 신학교 입학도 실패하며 좌절을 겪은 그는 쓸모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했다. 어찌 보면 세상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전도사라는 종교적 실천에서 화가라는 예술적 실천으로, 설교대신 그림으로 옮겨 간 것은 그가 단지 신을 만나는 장소를 이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갈망이 있었고, 예수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자연과 인간에게서 ‘신성’을 찾아내려는 고뇌가 있었고, 고단하고 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는 세상의 본질을 ”자연과 살아 있는 생명체 안에 본래부터 내재한다고 강렬하게 느끼는 것들”에서 찾으려 했다. 느끼는 것들, 즉 감정이 바로 본질을 알아채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자체로부터 느껴진 본질에 대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색채의 힘’이었다. 색은 그가 본 세상의 본질과 신성을 드러 내며 그것을 느끼게 해 주는 수단이었다.
그가 그림의 소재로 자연과 노동하는 인간을 그린 것은 신이 거기에 머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창조하는 신을 닮은 인간의 모습은 노동할 때이니까.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18년 간 보낸 668통의 편지에는 그의 절망과 고통이 가득하다. 하지만 매번 인내하고 노력한다는 다짐이 씌여 있다. 그는 10년 간, 2100점의 그림(유화 860점)을 ”아무런 예술적 편견 없이 마치 구두를 만드는 것처럼 “ 매일 그렸다. 그 행위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엄을 증언하는 일처럼 보였다. 그렇게 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오랫동안 그는 내게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그를 닮은 정도만큼 예술가적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이 책을 읽으며 예술은 이렇게 가혹해야만 하는 것인가란 질문을 하게 된다. 예술가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예술의 위대함은 무엇을 향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그는 외로웠고, 그의 삶은 헌신이었고, 그의 그림은 구원이었다.
3.
오래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했다. 1층의 데생 작품부터 한 점, 한 점 그림을 보다 ’ 까마귀 나는 밀밭‘ 앞에 섰다. 샛노란 밀밭에서 파란 밤하늘로 까만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는 그림이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떨렸다. 가슴이 아렸고 온몸으로 아픔이 퍼졌다. 한참을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그림 앞에 서 있었다.
그 그림에는 죽음이 선명하게 있었다. 그러자,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 느끼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버텨 내는 빈센트의 삶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까? 얼마나 외로운 것일까?
그래서인지 나는 테오가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가 형 빈센트에게 준 것은 형제간의 우애를 넘어 도덕적 헌신이다. 그것은 빈센트의 그림에 대한 확신이고 그의 예술의 방향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은 동생 테오와의 합주였다고 생각한다.
4.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p156
우리는 용서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삶과 화해하길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빈센트와 테오와 우리의 영혼은 어쩌면 이것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것을 지향하며 마음을 모으기 때문에 예술이 아름다운 것일까? 예술가와 그 관객이 함께 기도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