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

by 연두님

<심미안 수업>

윤광준. 지와인. 2020.

연두 글.



나의 할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시면 주먹 두 개 크기의 건전지가 매달린 라디오를 허리에 차고 음악을 들으며 동네 뒷산에 오르시곤 하셨다. 그렇게 시작하는 긴 하루 동안, 먹을 갈아 붓으로 글씨를 쓰시기도 하시고 산에서 주워 온 나무뿌리를 깎고 다듬어 알 듯 모를 듯한 조각을 해서 거실 장식장에 올려놓으시기도 했다. 나뭇잎 하나하나 걸레로 훔쳐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도 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일이다. 때로는 휘파람으로 긴 대중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셨는데 동그랗게 모은 입술새로 가느다랗게 떨며 나오는 그 나약하고 허무한 소리가 참 좋았다.


나의 할머니는 바느질을 해도 예쁘게, 음식을 만들 때도 그 음식을 담을 때도 예쁘게, 사과나 감을 사거나 무나 오이를 살 때도 예쁜 거로 사셨다. 그런 분이시니 동네 시장에서 홑이불을 살 때나 오랜만에 옷을 사야 할 때는 오죽했을까! 튀지 않는 고운 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들이 하늘거리는 천, 그리고 작은 단추며 솔기의 디테일까지, 그렇게 고른 것들은 희한하게도 들여다볼수록 더 이뻐 보였다. 물건에 대한 할머니의 미적 애착은 비어 있는 것은 견디어도 추한 것은 견딜 수 없다는 가난한 선비의 결기 같았다. 나는 그렇게 모아진 할머니의 물건들이 좋았다. 씩 웃으시며 문갑장에서 꺼내시던 하얀 박하사탕이 든 틴케이스도 멋있었고, 색색의 비단조각을 이어 만든 빵빵한 바늘꽂이도 참 고왔다.


아름다운 것들을 볼 줄 알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서 아름다운 것들로 일상을 채워가는 모습,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그 모습들을 사랑했다.


‘살필 심’에 ‘아름다운 미‘와 ‘눈 안’의 글자가 모인 ’ 심미안‘은 내게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온종일 영어를 틀어 놓으면 저절로 귀가 뚫린다며 영어 조기교육에 다들 호들갑을 떨 때도, 나는 라디오를 93.1 MHz에 맞춰 놓고 클래식음악을 틀었고, 아이들이 그린 야수파 못지않은 과감한 색채의 그림을 원목 액자에 넣어 집안 곳곳에 걸었다. 매일 사용하는 컵에서부터 매해 봄이면 뿌리는 꽃씨, 그리고 심지어는 칭찬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예쁘다! “인 것까지,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일상의 모든 선택에 관여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취향은 순수하게 만들어진 것인가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예술을 상류 계층의 문화나 배운 자들의 취향이라 여기고 그 길에 선 것은 아니었는지, 다른 것들로 꺾인 자존심을 남몰래 찾기 위해, 그렇게 남들 위에 서려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예술의 취향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다.


<심미안 수업>을 읽으며 윤광준 씨가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라기보다는 예술애호가로 보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내가 조심스러워하는 지점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좋은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을 가까이한 것은 더 깊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보다는 그것들을 감상하고 사용해 일상에서 그의 자신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좀 더 깊이 내려가서 느꼈으면, 좀 더 멀리 이어져 연결됐으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것이 삶을 장식하는 것을 너머 생과 사를 통찰하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책을 통해 답을 찾곤 하는 내게는 읽는 내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책을 덮고, 나는, 예술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을 피하는 것이다. 진부한 것, 상투적인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도 생존을 위한 것이지 않을까? 익숙하고 당연한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에 대비하지 못하게 하니까. 인간의 의식을 갈고닦아 예민하게 만드는 예술은 결국 생존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덧없는 생과 덧없는 일상과 덧없는 아름다움에서 영원한 것을 찾고 싶은 것일까?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셨고, 조부모의 삶을 즐겁게 만들었던 고상하고 아름답고 이쁜 것들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가시거리 밖의 우주의 이치로라도 이해하는 것, ‘심미안’에서조차 생명의 보편적 성질을 찾고 싶은 마음, 예술에서 생존을 읽어 내는 것, 어쩌면 이것은 내가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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