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중환자 실에서의 이틀(1)

처음 겪은 아나필락시스 쇼크

by 트랄라샘

나는 어렸을 때 계란을 참 좋아했다. 제사상에 항상 올라가던 그 계란을 제사가 끝나자마자 입안에 쏙 넣는 재미에 늦게까지 제사를 기다리기도 했다. 친척들도 계란은 내 차지라는 것을 다 암암리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성인이 되어보니 계란만큼 완전식품이 없었다. 의사들이 아침에 먹으면 좋은 식품에 항상 순위에 오르는 계란! 그런데 그 맛있는 계란을 우리 아들은 못 먹는단다. 못 먹는 정도가 아니라 먹으면 많이 아프다고 한다....


2년 전 싱가포르에 가기로 결정이 되고 한 참 출국준비를 할 때였다. 남편의 파견 결정이 되자마자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그래도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이의 알레르기 케어였다. 아이가 다니는 대학병원 교수님과 협의하여 삶은 계란 유발검사가 가능한 날을 정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가기 전에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고 가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유발검사가 가능했고 인근지역에 알레르기 담당 교수님이 안 계셔서인지 그나마도 예약이 꽉 찼다. 겨우 여름방학식날 날짜를 받고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남편도 휴가를 받기로 했다.


아이 면역치료 날! 방학식 날 외에는 유발검사가 가능한 날이 없어 피치 못하게 2,3교시는 아이 병원에 가서 아이를 돌본 후 4교시에 돌아와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구운 계란을 조금씩 집에서 먹어오던 아이였기에 삶은 계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것이었고 조금씩 반응을 살펴보며 양을 늘리는 검사였기에 큰 부담 없이 진행하였다. 방학식날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일정임에도 강행했던 것이 그동안 빵, 구운 계란 형태로 하고 있었으므로,,,


삶은 계란 2개를 도시락으로 준비해 갔고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담당간호사분이 프로토콜에 맞게 계란을 소량 소분하고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측정기도 끼우며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계란을 먹고 아이가 조금 괴로워했다. 반응이 벌써 일어났다기보다 계란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고 익숙지 않은 맛인지 아이는 맛도 싫어했다. 두 번째 계란을 먹고 나서는 목과 입술이 가렵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붉어지거나 하는 반응은 없었다. 아이가 먹을 때마다 간호사는 혈압도 체크했다. 세 번 째는 양이 좀 많다 싶어서 간호사분 께 "이렇게 많이 먹어요?"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아이가 반응이 없었으니 소분해 놓은 계란을 역시 먹였다.


이때부터 아이가 불편해해서 태블릿 PC로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고 프로토콜대로 다 먹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불편을 호소했지만 아이는 기특하게 다 먹었고 나는 20분 정도 지켜보고 학교로 방학식을 하러 복귀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병원이라 이동이 편해 정말 다행이었다.


방학식을 하고 있는 중에도 나는 아이가 신경이 쓰여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이상해서 전화도 해봤다. 역시나 답이 없었다. 나는 이동 중이거나 아이랑 다른 대화를 하고 있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10-2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 보면 연락 줘.' 메세지를 남겨놓고 방송조회를 연결했다. 그 사이 다시 한번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받았다.


"아이는 어때?"


"...."


항상 침착한 남편은 역시나 침착했지만 자꾸 말을 아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이가 알레르기 반응이 좀 세게 왔어.."


"어떻게 왔는데?"


그때 전화기 너머 담당교수님이 큰소리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 지금 의식 잃었어?"


"아무튼 반응이 좀 세게 온 것 같아."


남편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아 더 불안했다. 내가 놀랄까 봐 그랬던 것 같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그때부터 어떻게 병원에 도착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방학식 중이었는데 급하게 수업이 없는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점심시간이 가까워 올 때쯤 교실을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선생님... 저는 언제 인사하죠?"라고 물으며 앞으로 나왔다. 사실 그 아이도 전학을 가는 날이라 내게 물어보려 나온 건데 아이들은 나에게 인사하러 나온 것으로 오해를 했다. 내가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내가 서있는 앞문 쪽으로 갑자기 다 같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주위를 빙 둘러싸던 아이들은 "선생님... "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아......"


너무 괴로웠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내가 좀 더 지체하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도 아이들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선생님이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인사를 제대로 못하게 됐어. 미안해... 대신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교실에서 우리끼리 송별회 한 번 더하자 얘들아!!! 오늘은 너무 미안해...."


"선생님 얼른 가세요. 다음 주에 꼭 올게요."


아이들은 그렇게 나를 보내주었다. 안그래도 갑자기 담임교사가 바뀌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인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병원까지 그 가까운 거리를 운전대를 어떻게 잡고 갔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병원에 부랴부랴 주차하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기 중환자실인데요. OOO 어머님 맞으시죠? 지금 중환자실에서 처치를 하려면 입원수속을 하셔야 오더를 내릴 수 있습니다.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네. 여기 병원이에요 1층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그럼 빨리 수속해 주세요."


중환자실이라는데 아이 상태를 물어보지도 못했다. 바로 입원수속하는 곳으로 갔는데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여기 도와줄 사람 없냐며!!! 그렇게 수속을 정신없이 마치고 중환자실로 올라가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환자실 앞에 십자가와 성경책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몇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의사분이 우리를 부르고 아이 신상정보를 물어보았다. 입원과 처치를 위해 다양한 아이 건강정보를 알려준 후 의사분이 아이가 좋아지고 있고 정리되는 대로 만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빨리 아이를 만나서 아이가 어떤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OOO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아이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전신이 뻘게져있었고 얼굴도 부은 채로 눈을 못 뜨고 있었다. 마음은 무너져 내렸지만 아이도 애를 쓰고 있는 중일 텐데.. 엄마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되뇌며 정신을 계속 가다듬었다. 의사, 간호사 분들이 아이이름을 부르며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간신히 대답을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됐어....'


내가 왔을 때 아이의 반응을 좀 더 보여주고 싶은 의료진들은 아이를 좀 더 불러보았지만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OOO아! 아니야!! 천천히 해. 무리할 필요 없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 기다릴게."


눈도 못 뜨는 아이를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보니 그래도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눈을 뜨고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식은 있는 상태였다.


대기 중일 때 담당교수님이 오셨다. 교수님은 생각보다 의연한 나를 칭찬했다. 속이 무너지고 있지만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정신줄을 똑바로 잡으려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모르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누구도 이 상황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의료진도 나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하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아이의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분들이었다. 오시자마자 궁금했던 것을 바로 물어보았다.


"이 병원에서 아이가 잘 치료받을 수 있나요? 혹시라도 소아 중환자실이 미흡한 상태라면 전원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교수님은 아이가 지금 잘 회복 중이기도 하고 아이를 최선을 다해서 케어하겠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한 편으로는 전원 중에 아이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일단 아이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자하여 다시 병실로 향했고 먼저 아이를 보고 불러주겠다고 했다. 아이를 다시 보러 가니 아이 안색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교수님이 이름을 부를 때 그냥 반응하던 아이는 내가 "OO아!."라고 부르니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OO아!!! 엄마야 엄마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