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 아이 감정 케어하기
8개월에 첫 알레르기 반응으로 응급실에 간 후 혈액검사를 했던 대학병원 교수님의 권유에 따라 두 돌까지는 철저히 계란을 차단했다. 워낙 먹성이 좋은 아이라 걱정했지만 사실 기관에 보내지 않을 때는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사실 집에서 요리하는 이유식이나 간식보다 시판음식을 먹을 때 문제가 생기곤 했다.
시판음식 대부분에는 알레르기 정보가 표기되어 있다. 메인 알레르기 정보뿐 아니라 함께 공장에서 제조한 알레르기 정보도 함께 표기하여 우리 아이처럼 중증알레르기인 아이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알레르기 표기가 정확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곤란할 때가 있다.
아이가 두 돌이 넘었을 때쯤 인천여행을 간 적이 있다. 대학동창의 아이도 우리 아이와 비슷한 나이대라 인천여행을 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바람도 쐴 요량이었다. 호텔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 아이짐을 바리바리 쌌던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 짐 싸는 일은 만만치가 않다. 특히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식당에 가서 아무 음식이나 먹기가 그래서 최대한 안상하는 멸치와 새우가루를 이용해서 채소와 푹 끓여낸 나만의 특제 덮밥재료를 항시 준비해 갔다. 아기 때부터 멸치맛을 좋아했던 아이는 온갖 영양소가 다 들어간 이 특제 소스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간식도 챙겨갔는데 마트의 아기과자 코너에서 새로운 과자도 담았다. 여행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하루 종일 잘 놀고 잘 먹던 아이가 호텔 숙소에 들어가서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갑자기 토를 해버려서 침대 시트가 난리가 났다. 호텔 직원한테 소상히 말해서 변상하겠다고 했었던 이야기는 이전 화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가 아파서 그런 거니 한사코 괜찮다고 하셨던 호텔 매니저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먹였던 음식, 움직였던 동선을 추적해 보는 데 짐작 가는 것은 새로 산 시판과자였다. 분명히 알레르기 정보에는 계란이 없었지만 아이는 새로운 과자를 먹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고 아이에게 모든 음식을 다 차단하며 살 수는 없었다. 계란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표기된 시판음식은 자유롭게 먹였는데 그러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디서부터 다시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이 된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이들의 생일파티이다. 아이눈에 케이크는 너무나 매력적인 음식일 것이다. 화려한 색깔, 먹음직스러운 모양, 게다가 아이들을 겨냥한 캐릭터 케이크는 왜 이리 잘 만든 것인지!! 파티쉐님들의 실력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안 후 우리 가족은 케이크로 생일축하를 하지 않았다. 떡케이크를 사거나 조그마한 몽쉘, 초코파이 등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기관에 가게 된 후 친구들의 생일잔치에서 다양한 케이크의 자태를 보게 되었다.
또 친구들이 먹는 케이크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나도 먹고 싶었는데....' 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친구들 생일파티 다 하지 말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그때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도 없었다. 아이도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장 케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가 쿠키, 케이크, 빵을 마음대로 못 먹는 것이다. 유치원, 학교에서 주는 간식이나 디저트는 거의 못 먹는다고 봐야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먹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야 했고 자신만 못 먹는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두 돌 이후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그 나이 아이에게 이 상황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해시키기는 것도 아이에게 못할 짓이었다.
아이는 워낙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다. 미주알고주알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공유하지 않아 나는 더 궁금했다. 하지만 어린 아가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자꾸 캐묻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이의 정서를 너무 방치한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삼성서울병원 김지현 교수님은 알레르기 아이들의 정서적 측면을 케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다. 또한 직접 진료를 받았을 때도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들은 정신과치료를 받는 아이도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아이의 감정과 정서케어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아이와 여행을 다녔고 아이가 유치원이 끝나면 놀이터에서 집에 들어가자고 할 때까지 놀기도 했다. 산으로 들로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이의 정서케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아이의 방과 후 수업은 거의 아이가 좋아하는 체육수업이었다. 덕분에 줄넘기, 축구, 골프,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도록 했고 아이가 하고 싶다는 바둑이나 과학실험을 등록했다. 그리고 1학년 말부터는 태권도를 시작해서 매일 아이가 저녁에 돌아올 때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왔다.
그런 아이는 밥을 양껏 먹고 샤워를 한 후 숙제부터 끝낸다. 그리고는 남은 시간은 뒹굴뒹굴 원하는 책을 보게 했다. 아이의 그 황금 같은 시간을 터치하지 않았다. 매일 풀어야 하는 문제집, 사고력 문제집 등은 꿈도 못 꿨다. 그냥 숙제와 독서가 다였다.
그렇게 초등 저학년을 보내니 아이는 스스로 찾아보고 싶은 분야가 생겼고 책을 통해 힐링을 받게 되었다. 아이의 정서는 그렇게 안정되어 갔다. 아이가 비교적 밝게 자라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자기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단단한 아이로 커가는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