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료를 위해 대형병원에 전전하다.
8개월 때 아이에게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계란이 들어있는 음식은 차단하며 지냈다. 그때만 해도 알레르기 케어에 미숙했던 나는 새로운 과자나 식재료를 겁도 없이 사용하고 여행처럼 응급케어가 힘든 상황에서 안 먹던 음식들을 가져가기도 하고 실수가 많았다.
우리 부부는 역마살이 있어서 그런지 산으로 들로 많이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은 가지고 간 과자의 알레르기 정보에 '계란'이 분명히 표기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먹고 밤늦게 호텔 패드에 토를 하기도 했다. 아이 음식 알레르기 정보를 확인할 때 제작 공정 중 '계란'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표기를 놓친 것이다.
'정직'을 모토로 살자고 한 우리 부부는 카운터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패드를 치워달라고 하며 침대 패드 세탁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호텔 측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그럴 수도 있다면서 한사코 변상을 거절하셨다.
이러한 이슈들이 생길 때마다 아이의 알레르기 수치를 확인할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동네 주변의 알레르기 소아과로 유명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먼저 혈액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교수님을 찾아뵈니 아이의 알레르기 수치는 생각보다 높았고 두 돌까지 계란을 철저하게 차단하라고 권하셨다.
나는 말씀대로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는 아이의 알레르기 식단을 잘 지켰다. 마요네즈 등 소스도 조심해야 했고 과자나 쿠키, 빵도 아무거나 먹일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계란이 들어가는 음식을 피하려고 보니 과자나 빵을 안 먹이게 되었다.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가 두 돌이 될 때쯤 남편의 이직으로 지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피치 못하게 나도 지방으로 전출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앞이 막막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정엄마와 멀어지니 복직 후 더욱 힘든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이사 전 알레르기로 유명한 소아과 교수님이 계신 대형병원으로 진료를 잡아 아이의 상태를 자세히 듣고 싶었다.
겨우 예약을 잡아 만나게 된 교수님은 소아 알레르기로 권위자이신 교수님이셨고 대기가 매우 길어 예약을 하고도 1시간 가까이를 대기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혈액검사를 먼저 하고 결과를 들으러 다시 갔었는데 교수님은 아이의 첫 진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아이는 알레르기 수치가 많이 높네요. 보통 우유, 계란 알레르기는 5세쯤 없어지는데 이 아이는 초등학교 가도 안 없어질 거예요."
"그럼 당장 저희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아이가 아직 어리니 일단 계란 들어간 식품들 차단만 하세요. 알레르기 수치가 떨어질 때쯤 면역치료도 고려할 수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일단은 병원에서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알레르기 케어를 철저하게 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가서도 알레르기가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마치 예언가처럼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물정 모르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무슨 교수면 모든 상황을 다 아는 건가? 우리 아이는 다른 케이스일 거야. 곧 괜찮아질 거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아이 케어만 철저히 하자!.'
그때만 해도 세상 자신만만했던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지금의 아이는 아직도 미량의 계란성분에도 목이 간지럽게 복통이 생겨 힘들어한다. 계란 알레르기는 점점 우리 가족의 삶에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