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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Dec 20. 2023

일상의 신비로움, 사람에 대한 존중

호퍼 A-Z - 얼프 퀴스터, 박상미 옮김

 현실에 너무 매몰되고 뭔가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몇 년 전부터 클래식 음악과 미술 작품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가고 있다. 비록 이론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고, 찾아 읽게 되는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 가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아마도 음악을 듣고, 미술 작품을 보며 계속 나와의 무한정 이어지는 대화를 해 나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며, 그러한 모습들이 바로 음악과 미술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큰 치유이기도 한 모습이리라 생각해 본다.


 그간 많이 접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한 ‘적극적으로’ 찾아 보게 되면서 그의 작품들이 나에게 전달해주는 메시지와 감정들을 더욱 깊게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4월 한국 최초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을 맞아 호퍼의 인생과 작품들을 알파벳 A에서 Z까지 분류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분류법을 정해 놓고 그에 맞춘 작품들과 호퍼의 삶을 설명해 주고 있어 약간의 억지(가령 Q는 Quebec인데, 이는 호퍼 부부가 여름 휴가를 갔던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어떠한 작품도 없는 식)도 끼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억지가 호퍼의 작품을 느끼고,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큰 장애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퍼를 인지하게 되고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나이트호크」를 비롯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지내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현실의 풍경 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가 넘치고 역동적이고 분주한 모습보다는 왠지 모를 외로움과 고독, 허무, 낯섦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사회 발전과 성장 속에서 커져가는 도시의 모습(대도시화 과정)과 대비해서 점점 더 고독해지고 어두어지고 소외되는 인간과 시골 농촌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우리가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멜랑콜리에 굴복하고, 우울증을 받아들이고 ‘숲’으로 들어가려는 유혹은 ‘약속’과 마주하게 된다. 약속은 항상 외부에 관련된다. 무언가를 약속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 죽음에의 소원은 자기중심적이다. ‘자아’(죽음)와 ‘약속’(의무) 사이에서 동요할 때, 결국 잠(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책 본문 中>


 호퍼는 본인 또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추구하고 있지만 ‘빛’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간 클로드 모네나 에두아르 마네, 빈센트 반 고흐,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들이 전달해 주는 느낌과 울림도 상당히 크고 깊은 여운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화풍이나 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리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깊은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달될 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도 더 큰 울림과 여운이 생기는 것 같다.


 특히 1500년대 후반과 1600년대 초반 대표적인 종교화가이자 극사실주의 화가로 명성을 날렸던 미켈란젤로 카라바조가 연상되는데, 카라바조가 극명한 대비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집중도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처럼 호퍼의 작품에서 ‘빛’(넓은 의미의 그리려는 대상)의 대비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극명하게 전달해 주는 듯한 느낌이다.


 모든 아티스트에게 ‘무엇’보다 ‘어떻게’가 훨씬 더 중요하다. 화가가 어떻게 빛을 화면에 그리느냐의 문제는 미술사를 통틀어 핵심 질문 중 하나다. 호퍼는 인상파처럼 햇살이나 햇빛을 공기 중에 흩어지듯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그늘진 곳(또는 덜 밝은 부분)과의 대비, 때로 과장된 대비를 통해 빛을 그린다. 그는 본질적으로 정적인 그림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 경우에는 햇빛과 그늘의 상호작용)을 표현하는 역설에 성공한 듯 하다. <책 본문 中>


호퍼는 앞서 언급한 그의 대표작 「나이트호크」에서 가장 잘 드러나듯 누구나 알고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다.


 하지만, 호퍼는 이 작품에서 그저 그리는 대상을 그저 사실적으로 그리지만 하고 있지는 않다.  

 정체가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행위,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 그리고 외부의 시간, 환경, 분위기 모든 것이 그저 평범하게 사람들의 행위 자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리와 내면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과 같이 있음에도 고독하고 외로운 듯 느껴지게 만드는 그 모든 환경까지 포함해서 우리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나이트호크」는 현대 도시 생활의 단면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여겨지며, (…) 식당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 외부, 그리고 관객을 분리하는 유리창의 존재는 정말 특별하다. 유리와 유리로 인한 거리 때문에, 유리가 없었다면 그저 사실적으로 보일 장면이 초현실적으로, 약간 과장된 듯 느껴진다. 호퍼가 리얼리스트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인데, 리얼리즘은 영화 속 현실처럼 과장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 본문 中>


 호퍼는 또한 “내 작품은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 포착된, 극도의 강렬함으로 재현된 하나의 순간들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그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디어를 기다리고, 모티프를 기다리고, 이 모티프가 내면의 이미지로 진화하기를 기다리고, 드디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그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 속에서 호퍼는 자신이 표출하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즉, 어떠한 것을 의도하고 염두에 둔 채 미리 기획하고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현실과 주변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순간’에 집중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예술의 큰 부분이 잠재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에, 작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들어간 것이고, 의식적인 지성의 작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호퍼 인터뷰 中>


 호퍼의 작품에는 또한 ‘숲’이 상당히 많이 언급돼 있다.

 주유소의 밝은 불빛의 건너편으로 보이는 어둡고 미지의 모습을 한 숲이라든지, 계단을 통해 내려간 현관문이 세상과 연결된 화려한 도시의 길이 아닌 숲으로 이어진 길이라든지, 케이프 코드에서 창을 열고 바라보는 저 너머에 무성한 미지의 숲이 보여진다든지, 호퍼에게 ‘숲’은 앞서 말한 대로 존재의 연속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아울러, 호퍼가 주목한 ‘빛’의 표현, ‘시간’의 포착 등과 함께 호퍼의 작품을 이해하는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인 듯 하다. 아마도 이 ‘빛’, ‘시간’, ‘숲’ 등이 사실주의 작품임에도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보다는 상과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다양한 생각, 여러 고민의 방향 등을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호퍼에게 불가해한 숲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수단이다. 마치 숲의 이미지가 우리 안의 무의식을 건드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호퍼는 그가 그토록 존경했던 괴테나 프로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숲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숲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들만 그림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 <책 본문 中>


 호퍼의 동년배들이 프랑스에서 ‘구상’의 대척점에 있는 ‘추상으로 길을 개척했다면 호퍼는 미국이라는 ‘거칠고’ 텅 빈 나라에서 다른 길을 모색했다. 보이는 것에 상대적인 ‘보이지 않는 것’, 인간의 ‘내면’, ‘형이상학적 감각’에 천착한 것이다. 그는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고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책 본문 中>


 단순하게 사물과 사람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품고 있을 다양한 내면 세계(자신의 내면 세계를 투영한)를 호퍼는 보여주고 있어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영화처럼 짧게 지나가지만 긴 잔상과 여운을 남기는 그러한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다.


 호퍼가 추구하는 미국적 ‘형이상학’과 ‘기이한’ 감각은 일종의 긴장감이다. 서양에서 전개된 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가 서사의 사라짐이다.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던 역사화는 현대에 들어 자취를 감춘다. <옮긴이의 말 中>


 호퍼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집 한쪽 벽에 드리운 햇빛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 햇빛이 벽에 드리울 때, (‘빈방의 빛’이나 ‘바다 옆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햇빛이 인간이 만든 벽을 만나 음영을 만들 때 인간은 미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 말이 없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호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상의 신비로움, 이를 재현하는 문제에 천착했다. <옮긴이의 말 中>


 호퍼가 미국의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100년여가 지난 지금에서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그리려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함께 묻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사회 발전 속에 우리가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 함께 공존해야 할 것들에 대한 호퍼의 생각과 무의식이 지금 현재도 여전히 유의미하고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예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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