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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오 Oct 22. 2023

그럼에도 꿋꿋하게 견뎌내지는 삶이란

저만치 혼자서 - 김훈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굵직굵직한 선의 역사소설로 자주 접했던 김훈 작가의 단편집.

 그간 김훈 작가에 대한 나만의 선입견이 있었음을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끼게 된다. 긴 호흡만 가능하고 거대담론의 얘기에만 관심이 많고, 특히 현학적이고 특유의 어려운 문체들로 지식을 과시하는 형태의 글쓰기가 아닌가 하는


 어느덧 7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작가가 여전히 우리 삶과 일상과 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을 갖고 있음을,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김훈 작가의 책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책의 처음을 열고 있는 ‘명태와 고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하루하루 삶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부던히도 치열하게 살아가던 한 인간의 인생이 국가 제도의 폭력으로 뭉개지고 결국에는 삶 자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그렇게 삶에 대한 희망도 욕심도 모두 빼앗긴 채 한 개인의 역사를 마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훈이라는 작가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공감과 함께 다시 김훈 작가의 글을 계속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특유의 대사 처리가 거의 없고, 생각과 내면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글인 탓에 속도감은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이전에 김훈 작가의 글에서 받았던 흥분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고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는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과 절망을 가십거리로 분노하고 이러쿵저러쿵 하기는 쉽지만, 실제 공감하고 같이 싸워주고 감히 ‘힘내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인 듯 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 양육을 책임졌던, 그러나 지금은 그 아이가 일련의 성범죄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상황을 맞닥뜨리며 자신의 인생을 되새겨보고 있는 ‘손’.


 읽을 때는 정말 김훈 작품답지 않게 술술술 속도감 넘치게 읽었었는데, 이 작품의 모티브가 오영환 소방사의 해운대에서 구조할 당시의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손이었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는 다소의 이질감도 함께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춘기 방황하던 전남편 자녀의 성범죄 전과 이력과 누군가를 구조하는 ‘따스한’ 손이 주는 느낌이 생경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성장 과정에서 절실하게 필요했던 ‘따스함’과 ‘간절함’이 철호에게도 필요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너무나도 조그맣던 손, 생명을 향한 강력한 의지, 그 간절했던 작은 손의 온기가 아직도 내 손에 깊게 배여 있다.”

 절실하고도 간절하고도 따스함을 바라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따스함과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한때는 가정의 중심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역할을 다해 왔을 선배 세대들이 이제는 가정과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가정을 해체되고), 서로간의 상처와 역사를 품고 있는 모르는 누군가와 ‘내기 장기’라는 다소는 씁쓸하고 외로운 소일 거리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저녁 내기 장기’.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재단할 수 없고, 또한 그 누군가의 삶 또한 치열하게 지나왔음을 그저 소일거리로 생활을 연명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보며, 나의 미래가, 나의 노년이 어떠할까 라는 마음 또한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더없이 외롭고, 덧없고, 쓸쓸할 모습이 아니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소중한 것들과의 단절을 겪지 않도록 지금을 더더욱 치열하게 살아갈 따름이다.


 “지나가는 것들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나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은퇴 후 명예 임원의 이름을 걸고 어느 정도 품격과 여유있는 노년 생활을 즐기던 ‘나’가 처리할 일, 부탁받은 일 등을 대장 내시경 검사 이후로 미루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대장 내시경 검사’.


 때로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때로는 과거의 연인에게서, 때로는 현실에서, 다양한 상황들이 얽히고 설키지만, 과거의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고 현재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힘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뿌듯할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던 과거가 지금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는 있겠지만, 과거의 성공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유독 노년의 삶을 살펴보는 작품이 많은 듯 하지만, 나 또한 부모님, 장인장모님의 나이들어감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비단 동떨어진 이야기로 단절되지는 않는 것 같다.


 “슬픔과 고통이 세월에 의해 풍화되면 마음속에는 환영이 남는다. 환영은 무력하지만 아름답다.”


 찬란해야 할 젊음의 한 켠을 노량진 공시생으로 처절하게 살아가는 젊음을 그리고 있는 ‘영자’.


 당장의 생활의 버거움과 한줄기 너무나도 작은 희망에 기댄 채 하루하루를 포기한 채 온전히 일말의 미래에 투자하며 살아가는 노량진 공시생들. 연애도 사회적 체면도 모두 한낱 허상일 뿐이며 지금 당장 더 싸고 풍족한 밥집을 찾고, 더 싼 고시원을 찾고, 당장의 욕구의 해소를 위한 동거를 시작하고, 시험 이후 각자의 새로운 길로 가게 되는(새로운 길에서는 과거의 노량진에서의 삶을 싹 지워버리는) 다소 처절한 청춘을 보여주고 있어 참으로 쓸쓸하고도 헛헛했다.


 나 또한 힘겨운 청춘을 보내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저와 같은 시기를 넘겨와서인지,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건너고 있을 모든 청춘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힘겹지만 잘 견디라고 말하고 싶다.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 인간의 생존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의 무서움이 새삼 느껴진다.


 가장 제도화되고 가장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군대에서 한 청년이 겪어 나가는 그리고 그 이후 사회에서의 희망을 준비하는 모습을 덤덤히 보여주는 ‘48GOP’.


 김훈 작가도 말했듯이 48년생인 작가가 군대를 다녀오던 시절보다 그다지 변하거나 발전하지 않은 군대의 현실을 보며, 그 시대의, 이 시대의, 더 나아가 앞으로의 세대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암담하다. 제도화된 폭력을 당연시 하고, 젊은 청춘의 국가에 대한 맹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곳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많은 자율과 자유과 부여된다고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얼마나 개선됐는지 궁금해 진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변하는 것들을 억누르고 있었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 변하는 것들의 힘이 조금씩 밀려가고 있었다.”라는 작가의 말이 더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님들과 그를 하느님의 품으로 편안히 인도하는 젊은 신부님의 모습을 그린 ‘저만치 혼자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묵직함이 느껴지는 작품이고,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나에게 있어 좀 더 깊이 다가왔다.

 사제로서 일상의 반복되는 고해를 사해할 수 있는 것인지, 소명을 다하고 죽음을 앞둔 수녀님들의 삶을 평안과 안식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신부님의 모습이 느껴진다. 실제 현실의 신부님도 40이라는 한창의 나이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게 됐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더더욱 신앙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사는 신부님들도, 수녀님들도 죽음이라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번민하고, 결국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음을 보며 ‘삶과 죽음’ 앞에서 하느님 앞에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태석 신부님 또한 마지막 시기에는 원망과 짜증과 두려움이 앞섰다고 하니, ‘죽음’이라는 미지의 시간과 공간이 주는 두려움은 너무도 크리라 생각되고, 하느님 앞에서 ‘흠’ 없이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해본다.


 “신앙의 신비는 파스카의 무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 있다.”는 김훈 작가의 말과 함께 최근 주보에서 읽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든 거기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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