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실한 소리를 찾기 위한 Pull-up
풀업 - 강화길
강화길 작가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설레고, 책이 오기를 기다리고, 오자마자 숨가쁘게 읽어 내려갔다.
짧은 분량이라 쉽게 읽혀 가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울한 내면과 현실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벽들로 인한(그러한 벽들이 실제로도 많이 있는 벽이기에) 주인공의 꼬여가는 상황을 바라보며, 그저 ‘소설 속 이야기’로만 넘겨버리지 못해 생각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저 우울하고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뭔가 시원함과 통쾌함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작가의 말’이 가져다 주는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 있겠지만, 작가의 말이 생략된 채 복수의 다양한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게 해 준 것도 크게 흥미로웠다.
이 책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엄마와 두 딸이 외견상으로는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비춰지지만, 실상 안으로는 각자의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간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상태이고, 그러한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하는 아슬아슬한 가족의 심리상황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그저 조용하고 지레 포기하고 자신의 한계를 지었던 주인공이 내면에 쌓아두었던 말들(자신의 처지로 인해 그저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가족들의 대우와 시선 등에 대한 내면의 진짜 ‘말들’)을 표출하기까지,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풀업(Pull-up)’은 자기 상처를 극복하고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와 마음과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을 피트니스 센터의 수직 상승 운동(풀업)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집안에서 소위 잘나가는 자식이 (물론 그 자신 또한 생활의 험난함과 고단함 그리고 그 위치에 오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했음은 인정하고) 가장 우월적인 위치를 점하며 가정 내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으로 어느 정도 일방통행하고 있는 구조들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늘 똑똑하고, 제 앞가림은 언제나 똑부러지게 하고,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에 취직해 집안의 대소사에도 가장 많은 경제적 후원(?)을 하고, 언제나 그런 고단함에 대해서도 가장 크게 인정받고 있는 자식이 어느 가정에나 있다. 이에 비해 늘 뒤처지고 지레 포기하고 자기의 한계를 지으면 더 이상 나아가려고 하지 않으며, 어찌보면 기생한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만큼 존재감도 미비하고, 잘나가는 자식의 눈에는 그저 ‘한심해 보이는’ 자식들 또한 존재한다. 이런 관계는 가족 내 부모 형제라는 공식적인 관계와는 별도로 발언권과 결정권을 지닌 ‘작은 헤게모니’가 존재하고, 일종이 갑을 관계도 형성되게 된다.
사실 나의 경우 또한 별달라 보이지는 않아 더더욱 공감하게 된다.
형제간에도 나이가 듦에 따라 경제적 환경이 형제간의 관계에서도 알게 모르게 우열을 정하게 되고, 그저 열위에 있는 형제들은 그저 우위에 놓인 형제들의 생각과 말을 묵묵히 따르기만 한다. 그 안에 내재된 불만과 잠재적 갈등의 요소들은 서로 간에 애써 모르는 척 하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그저 모든걸 양보하고, 우애만이 절대적인 가치인양 그저 갈등의 씨앗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살얼음판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시선과 규정에 의도적으로 억눌러 왔던 나의 목소리, 나의 삶. 그러한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존재를 찾는 이야기와 ‘가족’이라는 제도 속에 그저 삭혔던 감정들,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진심으로 미워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솔직해지지 못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가 아니라, 이렇게 돼야 한다는 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나의 감정에 ‘솔직한 나’를 생각해 본다. 그 생각들을 중심으로 가족들과도 지낼 때 가족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진정 어린 배려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너른 마음으로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작품 속에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과 작품해설 속에 눈길을 사로잡았던 문장들을 함께 적어보며 마무리한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싸우지 않았을까, 왜 눈치를 봤을까, 왜 솔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연 솔직해지는 게 가능할까?”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진심으로 미워한다는 것을. 몸소 익힌 변화의 감각을 바탕으로 더는 이해하지 않고 그저 인정하며, 지수는 자신의 다음을 향해 간다.”
“지금보다 더 크고 강한 몸. 편안하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 정말로 그런 날이 올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럴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곳은 지수의 궁전이 될지도 몰랐다. 문득 지수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기대와 마음, 생각들이 정말로 내 것이었나? 마치 꼭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 (이상 작품 中)
‘풀업’은 삶의 자극점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단번에 깨우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온몸을 관통하는 통증을 참아 내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지수가 자신의 언어를 찾게 되는 때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목소리와 한 몸이 된다. 동시에 지수는 이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소유정, ‘작품해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