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현관문 앞에 왠 박스가 있었다.
'오늘은 택배 올 곳이 없는데?'
박스에 다가가 보니 왠 수박이 한 통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수박에 정성스럽게 쓰여진 쪽지가 붙여 있었다. 순간 누가 보낸건지 생각이 났다.
한 달 전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는 순간 한 아이가 나타났다. 얼핏 3살 정도로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치고 인사도 했던 아이였다. 아이는 잔뜩 울상이 되어서 "엄마 엄마"라고 외치며 울고 있었다. 순간 예전 둘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 육아로 정신없던 시절 둘째 아이가 낮잠이 들었었다. 하필 아이가 자고 있는 시간이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였다. 나는 잠시 곤히 자고 있는 둘째 아이를 중간에 깨워서 함께 데리고 갈지 말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동안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잠을 깨우면 대부분 아이는 짜증을 내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아이를 데리고 옷을 입혀서 데리고 나가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육아를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잠시 외출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그냥 나 혼자 나가서 빨리 큰 아이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을 했다. 최대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작은 아이가 돌아올때까지 계속 푹 자길 바라면서.
큰 아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내렸고 나는 큰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동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쪽으로 다가가는데 순간 우리 둘째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서 나타났다. 아이는 신발도 신지 않고 자던 모습 그대로 엄마를 외치면서 울고 있었다. 나는 놀래서 아이를 바로 안았다. 날 본 아이는 그제서야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자 아이는 놀래서 엄마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을 나선 것이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길래 다행이였지 혹시나 아이가 밖으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날 이후로는 아이가 어느 정도 클때까지는 혼자두고 나가지 못했다.
아이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아이의 집이 정확히 몇 층이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몇 층에 사는지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대답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았고 우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엄마를 찾아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달래며 아이에게 엄마를 어떻게 찾아주면 좋을지 머릿 속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이와 내가 자리를 옮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아이를 데리고 있다며 전체 방송을 부탁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직원을 이곳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와 함께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방송 덕분인지 금방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큰 아이를 데리고 아이를 찾으러 가셨다고 했다. 방송을 다른 층에 사시는 분이 듣고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주어서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아이 역시 엄마를 만나자 잠시 그쳤던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 엄마는 울음을 멈추고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하셨다. 큰 일을 한 건 아니였지만 아이가 엄마를 무사히 만날 수 있어서 나 역시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그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 엄마는 그때 경황이 없었다며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호수를 물어보셨다.
"저희 시댁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한 번씩 야채랑 과일을 보내주시는데 같이 나눠먹고 싶어서요."
나는 괜찮다며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서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지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그리고 어제 이렇게 특별한 수박 선물을 놓고 가셨다. 수박과 함께 정성 가득한 편지,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받을 수 있어서 내가 오히려 더 감사했다. 무엇보다 각박한 아파트 생활에서 반가운 이웃이 생긴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