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26년 1월 1일 00시 10분 인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다. 저녁 9시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9시 30분쯤 짐을 붙이고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밤 시간 공항은 한산했다. 면세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직원들 대부분도 퇴근을 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낮 시간에 느끼는 공항과 밤 시간에 느끼는 공항은 공기부터 다르다. 같은 공간이라도 가득함과 텅빈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니. 너무 적막하다는 생각이 들자 공간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온기, 그들의 움직임,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그리워졌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사람이 많을 때는 한가로웠으면 싶고 너무 한가로우니 사람들이 적당히 있었으면 하니 말이다.
밤 11시 35분부터 탑승수속이 이루어졌고 새해를 만끽할 느낌도 없이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조금 전에 느꼈던 적막함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에 줄에 휩쓸려서 우리도 서둘러 우리 자리를 찾았다. 자리에 앉자 말레이시아어,영어,한국어가 뒤섞인 방송이 흘러나왔다. 말레이시아,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기장이 방송 중 갑자기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그러자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환호성과 함께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집에 있었다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신랑과 아이들과 함께 편안하게 티비를 보면서 25년을 돌아보며 26년의 새로운 다짐들을 서로 나누면서 새해를 맞이했을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맞이하는 새해라니. 이것도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였다. 마음 속으로 올 한해는 정말 해피뉴이어이길 바래보았다.
밤 비행기라서 말레이시아에 도착해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잠을 자는게 중요했다. 잠을 자다 비행기가 흔들리는 진동에 잠이 깨고 말았다. 기류가 좋지 않았는지 비행기는 연신 흔들거렸고 한 번 깨어버리고 나자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좁은 비행기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다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아침 식사를 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할 수 없이 아침을 받아서 먹었다. 치킨누들과 비빔밥 중 선택하는 거였는데 나는 비빔밥을 선택하고 아이들은 치킨누들을 선택했다. 작은 아이는 치킨 요리를 먹어보더니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먹지 않겠다고 했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항신료 맛이 느껴졌다. 비빔밥의 야채는 신선하고 맛이 괜찮았는데 고추장이 너무 맛이 없었다. 대체 어디 회사에서 고추장을 납품한건지... 여기 회사 고추장은 사 먹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일정을 위해서 잠을 다시 청했다. 그래도 다행히 한 시간 더 잠을 잘 수 있었다. 비행기는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짐을 챙겨서 아이들과 함께 내리는데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와서 바로 눈에 띄는 화장실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줄이 제법 길었다. 줄을 기다리는데 줄이 줄지 않았다. 화장실은 겨우 5칸이 있었고 그 중 한 칸은 우리나라의 푸세식 화장실 같은 형태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고 우리 역시 이용하지 못했다. 안에 들어간 분들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빨리 가서 수속도 하고 우리 짐도 찾아야하는데...이럴때는 시간이 참 안 간다. 우리는 하염없이 줄을 기다렸다. 그냥 기다리지 말고 갈까 싶다가 지금까지 기다린게 아깝기도 하고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다가왔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화장실 변기를 비롯한 주변에는 물이 흥건했다. 화장실 문도 물에 젖어 있었다. 순간 누가 비데를 사용했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서둘러 변기를 휴지로 닦고 볼일을 보는 수밖에.
우리 모두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우리랑 같은 비행기에 탔던 일행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조금 더 걸어가보는데 갑자기 비행기를 타는 곳이 나타났다.
"여기 어디야?어디로 가야지 입국수속하고 우리 짐을 찾을 수 있는거야??"
아이들과 나는 당황했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직원을 찾아서 붙잡고 우리 티켓을 보여주면서 어디가야 짐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직원은 우리에게 트레인을 타라고 했다. 우리는 반신반의하며 트레인을 타기 전 다른 직원에게 다시 물어보았고 그 직원 역시 우리에게 트레인을 타라고 했다. 우리는 트레인을 탔다. 속도는 무척 빨랐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할 정도였고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만 했다. 트레인 속도처럼 내 마음도 빨라지고 있었다. 밤을 거의 샜음에도 정신이 번쩍 났다. 짐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긴장감과 불안 속에 내 온몸의 세포들이 살아났다. 트레인을 타고 도착을 했는데 우리 짐을 찾아야 하는 c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직원에게 우리 표를 보여주며 c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보았더니 트레인을 타고 가라고 했다. 우리 트레인 타고 지금 왔는데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트레인을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왔던 곳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디가야 내 짐을 찾을 수 있는거야?' 나는 다시 공항 직원들을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럴때는 형편없는 내 영어실력이 너무 야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조금 커서인지 같이 도와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직원을 붙잡고 계속 물어보았고 그 직원은 트레인을 타고 다시 거기에 가서 수속을 하고 나면 너의 짐을 찾을 수 있는 c 구역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곳은 비행기를 타는 c구역이라는 것이였다.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우리는 트레인을 다시 탔고 이번에는 정확히 수속을 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속을 하는 곳의 줄은 길었고 우리는 도착하고 나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우리 짐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옆에 보이는 qr을 보자 입국 수속을 위한 qr체크를 안 한게 생각이 났고 우리는 부랴부랴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하자 체크가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여기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주소와 우편번호를 적어야 했는데 에어비앤비에 있는 숙소가 복사가 되지 않아서 하나 하나 손으로 적는 과정에서 진을 쏙 뺏다. 입국 수속을 위한 우리 차례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검사원은 qr을 제출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아직 완료하지 못했다고 하자 옆에 가서 qr체크를 다 끝내고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는 끙끙대며 주소를 입력했다. 특히 큰 아이는 submit와 reset의 단어를 몰라서 3번이나 다시 작성을 해야했다. 결국 우리는 입국 수속을 위한 qr작성을 완성했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고 2시간만에 우리는 우리 짐을 찾으러 나올 수 있었다. 컨테이너 위에 우리 짐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바퀴를 빙 둘러서 가자 가지런히 있는 우리 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안 찾아가서 짐을 내리시는 분이 아래로 내려놓은 듯 보였다. 짐을 발견하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매일 '우당탕탕 살자' 다짐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에 실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이런 과정을 즐기기가 참 어렵다. 공항 출입구를 나서자 새해라고 공항에서 준비한 건지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준비한건지 말레이시아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피뉴이어라는 인사와 함께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진짜 말레이시아에 도착했구나. 선물로 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바로 두리안 아이스크림이였다.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내 입에서 사르르 녹는만큼 긴장했던 몸과 마음도 녹아 내렸다.
'웰컴 말레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