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했던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한 이후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의 갈증을 느꼈었다. 본공연을 직관하기에 앞서 5가지 버전을 감상하고 공연 당일날 아침에 문학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블로그에 필사하신 것을 검색해서 읽는 것으로 예습을 했음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 알고 있지 않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직접 원전을 읽지 않아서 갈증이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발레 작품의 원작들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발레 작품의 원작이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안했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막상 읽어보니 언어의 유희로 가득한 인간의 심리 묘사로 가득차 있어 내게 입체적으로 다가와 특별한 재미를 주었다.
서론이 조금 길었다. 이번에 읽은 <마농 레스코> 역시 발레 작품의 원작이어서 선택한 책이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이미 발레와 오페라로 접한 마농과 데 그리외의 러브 스토리는 "끊임없이 쾌락을 쫓는 마농을 그럼에도 순수하게 사랑한 데 그리외의 이야기였고, 결국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데 그리외의 마음에 감화한 마농이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한 마디로 그토록 질기고 지독스럽게 사랑했던 불멸의 연인"이었다. 발레와 오페라에서 접하는 마농은 그야말로 내 마음에 훅 들어와 헤어나오지 못했던 작품들이었다.
쥘 마스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와 케네스 맥밀란 발레 작품의 원작
오페라 가수들이 빚어내는 앙상블과 발레 무용수들이 연출하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정작 소설 속에서 마농이 일으키는 온갖 사건 사고들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읽기가 힘들 정도로 책이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발레 작품의 원작들을 왠만하면 읽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 이상 이 책을 그냥 덮을 것은 아니었기에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마농의 행동 패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심리학에서 많이 나오고 거론되는 패턴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가졌던 거부감을 누르고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경계선 성격장애, 나르시시스트와 같은 진단은 관련 전문가들이 심도있는 검사 후에 내리는 진단으로 심리학 뿐만 아니라 정신의학과에서도 다루기 때문에 의학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용어들은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되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나가는 글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것으로 개인적인 해석으로 덧붙였습니다. 지금부터 쓰는 글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그냥 저의 견해일 뿐임을 미리 밝힙니다.
<마농 레스코>의 저자 아베 프레보는 성직자였다. 카톨릭 사제가 풍운아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들을 1731년에 <한 귀부인의 수기>라는 책을 쓴 것으로 <마농 레스코>는 그중에서 제 7권에 해당하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작가에 대한 소개글에서 "한 귀족 청년이 화류계 여성과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해 파멸하게 되는 내용이다. 인간의 열정이 빚어내는 숙명적인 사랑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진실하게 그려내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 되었다."라고 적혀있다. 저자 자신도 카톨릭 사제로서 러브 스토리를 쓰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것을 우려했었는지, 작가의 말에서 "거기서 이야기되는 사건 하나하나가 깨달음의 과정이고 경험을 대체하는 교훈이다...엄격한 독자는 이 나이에 운명과 사랑의 연애사건을 쓰려고 붓을 다시 드는 나를 보고서 아마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좀 전에 제안한 성찰이 건전하다면, 그것은 나를 정당화해줄 것이다."라고 씀으로써 미리 자기 자신을 보호했었다.
수미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마농이 매춘부라는 누명을 쓰고 프랑스의 식민지인 미국 뉴올리언스로 추방당해 아메리카행 배에 오르려하고 그녀와 함께 미국에 가려는 데 그리외의 모습을 어느 신사가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호송경관들이 이 불쌍한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둘이 같이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나 막대한 금전을 요구하는데, 이 연인들에게 매력을 느꼈던 신사는 데 그리외에게 돈을 주었고, 더불어 호송경관들에게도 돈을 주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친절을 베풀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런 일조차 있었다는 것을 어느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신사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데 그리외를 알아본다. 먼저 자신을 알아본 신사에게 고마워한 데 그리외는 그날 자신에게 관대함을 베푼 신사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명문가 집안의 자제로서 아버지로부터 지원을 받아 공부중이었던 데 그리외는 자신을 온순하고 조용한 기질을 지닌 청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중이었던 데 그리외는 어느 날 아미앵에서 역마차에서 내리는 마농을 보고 불꽃같은 사랑을 느낀다. 본능적으로 마농에게 다가간 데 그리외는 마농에게 말을 걸면서 마농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그녀를 수녀원에 보내려는 그녀의 부모님을 강하게 공격을 한다. **이 부분에서 강한 아버지(여기에서는 마농의 부모님)으로부터 어머니(마농)를 지키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떠오른다**그러면서 데 그리외는 마농에게 사랑의 도피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철부지 청년은 이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지만 마농의 환승연애 행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귀족 청년이어도 아직 학생이어서 돈이 부족했던 데 그리외 대신에 마농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세무관리인 B씨와 은밀한 데이트를 시작한다. 둘의 은밀한 데이트 사실을 포착하게 된 데 그리외는 망연자실한다. 데 그리외의 집안에서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장남과 하인들을 시켜 데 그리외를 집안으로 끌고 온다. 집안에 6개월동안 갇혀있었던 데 그리외는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있긴 했지만 사랑의 열병에서 해방되어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한다. 신학 공부를 시작한 데 그리외는 눈부신 성과를 이루며 어느새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되어있었다.
한편 데 그리외의 소식을 접한 마농은 그와의 면담을 시도한다. 면회실에서 만난 둘 사이에는 다시 불꽃튀는 욕망과 뒤엉킨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적극적으로 데 그리외에게 매력 어필을 하는 마농과 그런 그녀를 떨쳐내지 못하는 데 그리외의 모습에서 심리학에서 자주 접했던 행동 패턴들이 눈에 보였다. 마농의 사치를 감당하지 못해 그녀의 부모들이 마농을 수녀원으로 보내려 했으나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청년이 귀족임을 알고 동거를 시작하고, 그러나 아직은 돈이 없는 학생신분이기에 자신의 향락을 채워줄 또다른 이성 B씨와의 연애로 환승하고, B씨와의 연애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고 느끼면서 굳이 옛 연인이었던 데 그리외를 다시 찾아가 러브 바밍을 폭격하는 마농의 모습에서 혹시 경계선 성격장애 또는 나르시시스트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결국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이기는 하나 자아가 약했던 데 그리외는 마농을 끊어내지 못하고 그녀의 후버링에 말려든다. 이렇게 둘은 파리로 달아났고 둘은 쾌락에 탐닉한다. 데 그리외는 그 무렵에 마농의 오빠 레스코를 만나게 되면서 도박에까지 손을 대는 등 점점 타락에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데 그리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마농을 알고 있었습니다. 돈이 많을 때 그녀가 아무리 내게 성실하고 나를 사랑했더라도 돈이 없을 때는 그녀를 믿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 잘 경험했으니까요." 그러나 자아가 약한 데 그리외는 "그녀는 풍요와 쾌락을 너무 좋아해서 나를 위해 그것들을 희생할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이면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마농의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채워줄 이성을 끊임없이 찾으러 다니면서 다른 이성들에게 여지를 주고 환승연애를 하는 마농은 또다시 환승연애를 시작한다. 자신의 쾌락을 채워줄 늙은 부호 G.M의 애인이 된 마농은 "사랑하는 슈발리에, 당신은 내 마음의 우상이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당신밖에 없다고 맹세해요. 하지만 가여운 내 사랑, 당신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정조란 어리석은 미덕이라는 사실을 모르겠어요? 빵이 없어도 우리에게 애정이 넘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편지를 남기며 그의 곁을 달아나버린다. 이런 식으로 러브 바밍 폭격, 쾌락에 탐닉,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또다른 이성을 탐색, 환승연애, 그러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이성에게 "여전히 사랑하지만 돈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피를 말리는 말과 동시에 가끔은 데 그리외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비난을 하거나 후버링도 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못빠져나가도록 어장관리도 하는 마농.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경계선 성격장애나 나르시시스트를 의심해보았으나 소설 속에서 마농의 감정기복은 보이지 않아서 경계선 성격장애는 아니고, 또 평판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르시시스트와는 달리 아무 거리낌이나 죄책감없이 이런 패턴을 반복했던 그녀는 영원히 내면이 성장하지 않는 틴에이저, 쾌락주의자였다.
나르시시스트이든, 쾌락주의자이든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인생을 나락가게 하는 만든다는 점이다. 자아가 튼튼한 사람은 이런 유형을 멀리 하겠지만 자아가 약한 데 그리외는 오히려 "사랑하는 여인의 온갖 변덕에 맹목적으로 휩쓸리지 않을 남자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라고 반박한다. 자아를 상실한 데 그리외와 쾌락주의자 마농의 연애는 반복, 재생산되면서 세 번에 걸친 마농의 환승연애, 데 그리외의 도박, 마농의 절도, 그 둘의 투옥이 반복되면서 핑크빛 사랑이 아닌 지독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인생을 파멸해갔다. 결국에는 G.M 주니어에게 연애 사기를 친 마농이 매춘부라는 죄명을 쓰고 투옥되어 미국으로 추방당한다.
조용하고 온순한 성격을 지닌 데 그리외는 결코 순수하다고 할 수 없다. 사전적 의미로 온전하고 순전한 상태, 즉 아무 섞임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말하는 순수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사전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자아가 확고하고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 정도가 되어야 온순함이 가치가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분별력이 없는 온순함은 또다른 악을 낳는다. 소설 속에서 데 그리외는 아버지에게 "우리 시대에는 애인이나 게임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하는 약간의 속임수는 전혀 불명예로 여겨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아무 양심의 가책이 없이 자신을 묵묵히 도와준 친구 티베르주를 도구로 이용한다.
좋은 인연만 운명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악연도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의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데 그리외는 아버지에게 "제 모든 잘못의 원인은 사랑입니다. 치명적인 열정이죠! 아아! 그런 사랑의 힘을 모르시나요? 제 피의 원천인 아버지의 피는 이 같은 격정을 느껴본 적 없으세요?라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는 데 그리외에게 "그래 가라. 네 파멸을 향해 달려가라. 불효막심한 아들아."하고 소리친다.
이토록 데 그리외가 마농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질긴 인연은 마농이 죽고 나서야 끝을 맺는다. 마농은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날이 다가와서야 데 그리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뉘우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회한을 느끼면서 비통해하는 마농의 모습을 보면서 그제서야 내 마음이 조금 풀렸다.
프랑스 문학사 최초로 소설 속에서 타락녀를 탄생시킨 <마농 레스코>는 출판됨과 동시에 금서가 되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였는데, 이 금지된 책은 암암리에 유럽으로 퍼져나갈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어모았다. 출판 당시에는 "순수한 청년 데 그리외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타락한 여인 마농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데 그리외의 마농을 향한 맹목적인 열정과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에 매료된 당대의 지식인들도 적지 않았다. 심리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이 책이 데 그리외와 마농의 지독스러운 사랑 이야기로 비춰졌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그 시대의 관점으로 마냥 비극적인 사랑을 한 불멸의 연인들의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심리학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 관점을 바꿔 읽어야 할 것 같다. 데 그리외와 마농의 질긴 악연으로 인해 얽히고 설킨 운명의 소용돌이는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현실 세계에서도 재현되고 있지 않을까. 형태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수없이 반복, 재생산 되고 있을 이야기들일지도 모르기에 이 막장 연애 스토리는 오늘날에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그만큼 저자인 아베 프레보가 안 좋은 유형의 연애 심리와 행동 패턴들을 그림 그리듯이 실감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 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마농 레스코>는 문학으로 읽는 연애 심리학으로 고전 중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