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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 서연 9시간전

발레계의 스타트업 2. 영국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산업 혁명.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난다."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말을 뒤집고 산업혁명이 일어나 본격적인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농경시대를 공업시대로 바꾸었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특허권 역시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면서 수많은 발명가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경제적 보상을 얻게 되어 온갖 신기술과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술과 기계의 만남은 원자재 공급 및 소비 시장 확보까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유럽의 변방국가였던 영국을 세계 경제의 허브로 만들었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영국의 산업 혁명은 오늘날 AI시대가 부의 지도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당시의 영국을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제 미술로 넘어가보자. 분명히 미술 분야에서도 영국은 유럽의 변방국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미술사에서 찬란하게 한 획을 긋고 있었을 때 영국 미술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영국은 창조의 왕국이다. 현대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어봤을, 죽은 상어를 방부액에 넣어 전시한 데미언 허스트, 팝 아트의 대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줄리언 오피,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 등 영국을 넘어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작품이 잘 팔리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이유는 사치 갤러리, 데이트 모던 등 창의적인 작가들을 알아보고 후원하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자국의 작가들을 알리기 위한 아트 페어와 미술품 경매 시장의 급성장이었다. 세계 경제 패권과 미술사의 지도를 바꾼 영국은 발레사에서도 발레 헤게모니를 바꾸어 놓았다.

신사의 나라 영국을 발칙한 상상력으로 물들이고 있는 뱅크시


영국 발레에 호기심을 가졌을 때부터 발레 신생국인 영국이 어떻게 단숨에 발레 패권을 거머쥐었는가에 주목했다. 그것도 발레의 역사가 짧은 영국이 판권을 빌려와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닌 고전 발레작품부터 드라마 발레, 추상 발레, 컨템포러리 발레 등 어떻게 거의 대부분의 발레 작품을 자체 버전으로 제작할 수 있었는지, 그게 왜 하필(?) 영국이었는지가 궁금했다.

https://www.rbo.org.uk



영국 발레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매우 역동적인 활기를 띄고 있는 영국 발레. 여기에는 안무가들과 창작팀의 왕성한 창조력과 함께 발레 단원들이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로열 발레단 역시 팔은 안으로 굽고 있었다. 가급적 로열 발레스쿨의 학생들을 흡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열 발레스쿨은 전세계로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엄청난 수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만 한다면 로열 발레스쿨에 입학할 수가 있다. 몇 년전 한국의 김채은 학생이 4000:1의 경쟁률을 뜷고 로열 발레스쿨에 입학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구민지 학생이 이 엄청난 관문을 뚫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 혹시 다른 메소드로 발레를 배웠는데, 로열 발레스쿨에 입학은 하고 싶지만 RAD 메소드를 몰라서 걱정이 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민지 학생처럼 미리 RAD 메소드를 배워서 오디션을 본 경우도 있지만 로열 발레스쿨에서는 해당 학생이 RAD 메소드를 아는지보다도 학생의 역량을 먼저 본다. 역량이 충분하다면 입학 허가가 떨어진다.

https://youtube.com/shorts/Ao5uaf0CpYY?si=KW9FZQUmgisUwKFu

https://youtu.be/FtF6Y7fQm-o?si=jG2B01L2nX8Sfl6p


다음은 전준혁 발레리노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했다. "로열 발레스쿨에서 발레 클래스, 캐릭터 댄스, 필라테스를 배웠다. 운동도 배우는데, 특히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운동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두 번 배운다. 클래식 발레 수업에서는 솔로 작품, 코르 드 발레, 파드 되와 연기 수업을 배웠다. 학과 공부는 영국인 학생들의 경우 셰익스피어 문학으로 고전 영어를 배운다.", "예술 작품에 대해 분석을 하면서 개개인의 생각을 끌어내고 해석하는 것을 배웠다.", "음악 교육에서는 이 음악이 여기에서 출발했는데, 무대 세트는 왜 이렇게 만들고 의상은 왜 이렇게 디자인 했는지.", "네가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티켓 가격을 얼마에 책정하고 음료나 간식에는 얼마의 예산을 투입해서 얼마만큼의 수익을 남길 것인가?" 등등 다양한 주제로 무대 예술 전반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통과해야 했다고 한다.


역시 전준혁 발레리노의 인터뷰 내용이다. "로열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들 크리스토퍼 휠든, 웨인 맥그리거 등 덕분에 무용수들은 신작을 자주 무대 위에서 수가 있고, 신작을 하지 않는 해에는 레퍼토리를 바꾸어서 무대 위에 올리고, 때로는 발레단 측이 해외 유명 안무가들을 초청해서 안무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경우에는 일년에 두, 세 작품의 신작을 한다."

https://youtu.be/ycGD1miJRGc?si=Q-vulXcAB7fR7Kb3



이렇듯 로열 발레스쿨에서 전세계 인재를 흡수하고, 그 인재들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킨다. 레벨을 통과하기 위한 시험을 볼 때마다 로열 발레단장이 늘 와서 참관한 후 잘하는 학생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졸업할 때 즈음 그 우수 학생들을 발탁한다고 한다. 게다가 발레단 내에는 상주 안무가들까지 있으니 인재 흡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우수 학생들을 선발, 창작팀의 창작력, 어메이징한 무대 세트를 갖춘 극장까지 로열 발레스쿨과 로열 발레단이 활기를 띨 수 밖에 없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로열 발레스쿨과 로열 발레단의 공격적인 마케팅도 이러한 역동성에 한 몫 한다. 로열 발레스쿨의 교내 생활, 학교 시설, 발레 및 타분야의 댄스를 배우는 모습을 비롯해 미술 수업을 받는 장면, 발레 선생님에게 티칭받는 장면까지 영상으로 공개하고 있다. 또한 로열 발레단은 시즌마다 유튜브에 작품 리허설 공개, 그리고 본 공연날 RAD의 수장이자 로잔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인 다시 버셀과 영국의 유명 앵커가 공연 시작 전과 인터미션 중에 출연해 작품 전반에 관한 해석과 관련 전문가들과 음악, 무대 배경, 의상 디자인 등에 관한 인터뷰를 한 내용을 영상물로 제작해 전세계에 뿌리고 있다.

전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현 RAD수장

https://youtu.be/gYv13ZLFZ_8?si=sal6E6V3YBgy13og

https://youtu.be/kHeMc0fmggA?si=7MYwrn16ue1Zl-gF



현재 로열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 크리스토퍼 휠든 역시 로열 발레스쿨에서 체계적인 발레 교육을 받고 로열 발레단에 입단해서 무용수로서의 커리어부터 쌓았다. 이후 뉴욕 시티 발레단으로 이적해 솔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안무가로 전향해 미국에서 안무가로서의 정점을 찍었다. 다시 로열 발레단에 돌아온 휠든은 미국에서 만들었던 발레 작품들과는 전혀 색깔이 다른 발레 작품들을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 조지 발란신, 제롬 로빈스의 발레를 접하면서 크리스토퍼 휠든은 매우 뛰어나고 감각적인 네오 클래식 작품을 만들었고, 브로드웨이의 의뢰로 어메이징한 뮤지컬 안무도 했다. 휠든이 로열 발레단을 위해 만든 작품들 중에는 영국인 특유의 블랙 유머가 담긴 작품도 있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https://youtu.be/CXONhMCk4Wk?si=-hrHRHFE7Uyxu9qe



로열 발레단의 또다른 상주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 역시 범상치 않은 안무가이다.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단테 프로젝트>를 안무하는가 하면 작품 제목은 <크로마>인데 채도값이 낮은 단색화같은 무용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매우 현란한 춤을 추는 작품도 있다. 이렇게 발레 테크닉의 규칙을 확 깨는 작품들을 출 때에 발레 무용수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그 규칙을 깨는 것이다. 몸을 자유롭게 풀어서 춤을 춰야하는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에서 발레 무용수들은 그 동안에 발레의 규칙으로 장시간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규칙을 깨고 발레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으로 춤추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발레를 배운 무용수들은 쉽게 적응할 것 같다. 로열 발레스쿨에서는 학생들에게 고전 발레,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하면서 다채로운 리듬감각, 춤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고 교육시켜서 로열 발레단이 원하는 인재로 키우니까 말이다.

https://youtu.be/2SMmL6kIx-w?si=61tYei6BG0Uv4nJU



근, 현대사에서 재능있는 인재들에게 투자하고 체계적인 제도화와 교육 시스템으로 여러 분야에서 세계 지도를 바꾼 영국을 통해 앞으로 한국 발레 교육도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문제 해결의 과제까지 고찰해 보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영국이 보물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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