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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시학

혁신의 아이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하버드대 음악강연"

by 아트 서연

미국의 안무가 조지 발라신은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기본이에요. 나는 그저 음악을 읽는 법을 배운 안무가일 뿐이죠. 내게는 그만큼 음악이 중요해요. 우리는 시간을 창조할 수 없어요. 시간을 창조하는 건 작곡가죠. 작곡가는 시간을 건축하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 춤춰야 해요.

발란신은 무용수들이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도록 가르쳤다. 가르치는 방식과 안무 모두 음악을 따랐다. 이런 발란신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음악이었다. 특히 평생동안 예술적인 협업을 했던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그의 발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이었다.


스무살 이상 차이가 나는 나이를 뛰어넘어 평생 예술적인 파트너이자 우정을 나눈 발란신과 스트라빈스키.

전 생애에 걸쳐서 발레음악 창작에 깊이 관여하면서 음악사와 발레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로 평가받는 스트라빈스키는 만드는 곡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음악사에서 카멜레온 작곡가로 불리우는 스트라빈스키는 발레음악에서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발레뤼스의 디아길레프의 부탁으로 쇼팽의 음악을 발레 음악으로 편곡한 <레 실피드>를 시작으로 출세작인 <불새>, <페트루슈카>,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던 <봄의 제전>, 신고전주의 발레음악인 <뮤즈를 인도하는 아폴론>, <풀치넬라> 등과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받아들여 작곡한 발레음악<아곤>까지 그의 음악인생은 발레음악의 창작과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봄의 제전>으로 전위적인 모더니스트, 혁명적인 음악가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정작 작곡가 본인은 1939년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음악 강연에서 "혁신은 전통과 함께 갈 때에만 생산적일 수 있다.", "예술은 통제될수록 더욱 자유롭다."라고 강의했다. 그러면서 <봄의 제전>같은 작품이 '혼돈, 무질서, 전복'을 뜻하는 혁명적인 음악이라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고 말하면서 오직 자신의 친구 모리스 라벨만이 본질을 제대로 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가 하버드대에서 강의했던 <음악의 시학>은 작곡가가 생각해왔던 음악적인 고백과 함께 음악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있다. '음악 만들기'를 뜻하는 <음악의 시학>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시간예술인 음악을 창조할 때에 일자(질서, 체계, 규율)가 있어야 다자(떠오르는 영감, 상상력, 소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질서있게 소리를 시간 속에 배열한 것이 바로 '음악'이며 상상력이 헛되게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규율과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스트라빈스키는 디오니소스 적인 요소인 다자를 통해 아폴론같은 균형잡힌 일자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책의 전반에 걸쳐 강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통한다.



"가장 좋은 예를 들어 보지요. 푸가는 음악이 음악 외의 그 무엇도 의미하지 않는 완전한 형식입니다. 그러나 푸가가 규칙에 대한 작곡가의 복종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작곡가는 그 제약 속에서 창작의 자유를 활짝 꽃피우지 않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말했죠. "힘은 제약에서 태어나 자유로 인하여 죽는다.""

- <음악의 시학>,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지음, p. 102 -


"발레는 언제나 질서, 위계, 전통의 예술이었다. 그렇지만 엄격함과 규율은 모든 진정으로 급진적인 예술의 기초이다. 발레의 규칙, 한계, 의례는 가장 해방적이고 인습타파적인 업적의 출발점이 되어왔다.

-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p. 646 -


음악의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창의적인 리듬으로 새로움을 추구. 음악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디오니소스적인 요소보다도 그것을 아카데믹한 자세로 어떻게 만드는지를 더 중시했던 작곡가. 세간에 알려졌던 편견과는 달리 음악의 본질을 지킨 아폴론같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미학보다는 음악을, 진보보다는 전통의 연속성을 중시한 그는 <음악의 시학> 곳곳에서 바흐, 비발디, 하이든, 모차르트, 로시니, 브람스, 베르디, 구노,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음악 외적인 요소보다도 순수음악, 엄격한 형식미를 부활시키고자 했던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언어를 더해 신고전주의 음악을 탄생시켰다.


발레의 본질은 지키되 스토리텔링을 없애고 오직 음악과 춤만 남김으로써 신고전주의 발레를 탄생시킨 안무가 조지 발란신.


이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인가!

당시 발란신과 함께 했던 무용수들의 증언이다.

"발란신은 안무를 만들 때에 박자를 맞추며 늘 시계를 보았어요. 그리고 언제나 스트라빈스키와 상의했지요."

"스트라빈스키는 시간에 집착해서 집이 시계로 가득했고, 둘은 언제나 시간이나 시간분할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스트라빈스키의 초상화



참고, 인용한 문헌 및 영상물

<음악의 시학>,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지음, 이세진 옮김

<음악의 기쁨> 1,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아폴로의 천사들 : 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정은지 옮김

<발레 음악산책>, 김지현 지음

<발란신의 발레수업>,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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